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가치 외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담과 여러 양자 회담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앞세워 미국에 한층 밀착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는 더욱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면서 디커플링(관계단절)에서 디리스킹(위험완화)로 바뀌는 국제 정세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뜻을 모은 ‘3국 간 새로운 수준의 공조’를 부각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2일 <와이티엔>(YTN) 인터뷰에서 “세 나라의 안보 공조를 질적으로 강화하자는 얘기가 되겠고, 경제 공급망, 인적 교류 등 사회 문화 분야까지 그동안 소홀히 했던 협력 어젠다를 구체화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 정상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향후 미국 워싱턴에서 다시 만나 구체적인 협력 강화 방안을 다듬을 예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는 거리를 뒀다. 윤 대통령은 G7 기간 동안 중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반대와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를 언급하며 에둘러 중국을 겨냥했다. 한국 정부가 그간 견지해오던 미, 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는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이 최근 대중 전략을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바꾸는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비교정치)는 <한겨레>에 “한·미·일 협력으로 방향 설정을 한 뒤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큰 비용은 중국 관계 설정 문제”라며 “정책의 전환은 있으나 어떻게 장애물을 돌파해나갈 것인지 관련된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무역 의존도가 높고, 북한 핵 문제에서도 협력이 필요한 대중 관계에 대한 복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중국과도 긴밀한 소통이 오가고 있다며, 대중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김태효 차장은 <와이티엔> 인터뷰에서 “(중국과) 서로 사람을 보내고 받고 현안을 제기하는 과정에 있다”며 “양자(한-중, 중-일) 간에 현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면 적절한 시점에 한·중·일 정상회담도 얘기할 분위기가 오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중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
한켠에서는 윤 대통령이 한·미·일 협력에 치중한 나머지 대일 관계에서 관철시켜야 할 요구를 접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지난 21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여전히 과거사 문제나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어문학부)는 “한·미·일 (공조)가 정체성으로 굳어지는 상황”이라며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합의 문제 등 본질은 언급하지 않은 대일 외교를 보면 이번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확인된 회담이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이사회) 상임의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유럽연합은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서, 지난 60년간 정치·경제·글로벌 어젠다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발전시켜 왔다”면서 △한-유럽연합 그린·보건·디지털 등 3대 파트너십 강화 △장관급 전략대화 신설 △지역 국제 현안 공조 △경제 안보 등 공급망 구축 공조 △과학기술 교류 기반 확대를 발표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