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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윤 대통령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 덜컥 내놓은 이유

등록 :2022-06-26 07:30수정 :2022-06-26 16:53

[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보수정부가 경제위기를 맞는 태도

국힘 ‘공정’ 이미지로 대선 승리
경제위기 시기 필요한 건 따뜻함
법인세 감세는 ‘이명박 2.0’ 정책
강자 횡포 물리치고 약자 편 서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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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다양한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입시와 취업, 병역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반칙과 특권이 허용되지 않도록 한다. 국민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보장할 것이며, 개인의 존엄과 창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

“유능한 정당, 책임 있는 정부를 통해 혁신과 성장을 지속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개선하는 노력을 병행하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이다. 이제 우리는 ‘공정, 안전, 포용, 번영, 평화’를 우리 시대의 핵심 가치로 삼아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 국가’를 실현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국민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절차지만, 이념과 가치가 다른 집단 간의 권력투쟁이기도 합니다. 정당은 자유, 민주, 성장, 복지, 일자리 등 그 시대에 필요한 이념과 가치를 내세워 표를 찍어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정당법은 정당의 ‘강령(또는 기본정책)과 당헌’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반드시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강령(綱領)은 정당의 이념과 가치, 정책 목표 등을 정리한 문건입니다.

민주당 패배 원인 열쇳말 ‘위선’

앞에서 소개한 두 개의 글은 각각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강령 전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것이 국민의힘 강령이고 어느 것이 더불어민주당 강령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왜 패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정, 안전, 포용, 번영, 평화’라는 핵심 가치가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패배했을까요? 그럴 리가요.

<한겨레> 정치부에서 최근 민주당 지지자 28명을 대상으로 표적집단 심층면접을 했습니다. 선거 패배 원인 진단 중에 “‘조국 사태’와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이은 권력형 성범죄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에 ‘위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 세력의 후예입니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민주당의 핵심 가치입니다. 역대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유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는 어쩌면 민주당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준 것은 이재명 후보와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지도부와 민주당 의원들이 바로 그 ‘착한 사람들’이라는 ‘아우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능보다 위선이 치명상이었다는 얘깁니다. 민주당이 이러한 정체성과 아우라를 회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어떨까요?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전혀 다른 정당입니다. 역사도 다르고, 지지 기반도 다르고, 처해 있는 정치적 환경도 다릅니다.

국민의힘은 ‘이른바 보수’입니다. 지금 국민의힘 당사에는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세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건국’, ‘근대화’, ‘민주화’의 상징이겠지요. 하지만 이승만·박정희는 독재, 김영삼은 외환위기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역대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이른바 보수가 ‘착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유능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정당을 찍었습니다. 고도성장의 혜택으로 절대 빈곤층이 줄었고 중산층이 두꺼워졌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중산층이 몰락했습니다. 양극화가 더 심해졌습니다. 이른바 보수가 유능하다는 신화가 무너진 것입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처음으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한번 지면 자꾸 질 수 있는 것이 선거입니다. 이른바 보수는 2002년 대선, 2017년 대선에서도 졌습니다. 2012년 대선도 질 뻔했지만,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후보로 나와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 따뜻한 보수의 프레임을 앞세워 겨우 이겼습니다.

‘따뜻한 보수’ 기치로 5년 만에 정권 찾아

저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민주화 구현, 사회적 양극화 해소,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 등 따뜻한 보수의 가치를 앞세웠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령 전문의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고,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며,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여 공동체 신뢰를 회복한다”는 대목이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국민의힘이 강령에서 제시한 가치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 조국 사태 등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의 약점을 정확히 저격한 것입니다. 정권심판론과 그로 인한 반사이익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둘째, 그러한 가치에 들어맞는 대선 주자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한 관료이면서 부패 척결의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그렇게 해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민주화 구현, 사회적 양극화 해소,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라는 가치에 걸맞은 인물일까요? 국민의힘이 그러한 가치를 정말로 구현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한달 정도가 지난 올해 6월16일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인하, 규제 철폐 등이 핵심입니다. 과도한 규제와 정부 개입이 기업의 자율성을 제약해 민간투자가 위축된 것을 우리 경제의 근본 문제로 보고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없애 성장력을 회복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어려운가요? 쉽게 말해서 14년 전 이명박 대통령의 ‘엠비노믹스’,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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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들을 대거 기용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베껴서 들고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른바 보수 신문들도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총론적으로 옳다”고 할 뿐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내용이 너무 부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전체적으로 경제정책 기조에는 두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 우선 있는 자들에 대한 세금 경감과 재벌과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추론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막연하고 비현실적이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낙수효과로 국민들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하지만 오히려 강자들만을 위한 힘의 질서를 강화하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

두번째 심각한 문제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의 미래 전망이 어둡고 불확실성이 큰 위기 국면에서 이런 낡고 허술한 틀만으로 대처하겠다는 매우 안이한 자세다. ‘정부는 과도한 시장개입을 지양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지난 정부의 개혁과제를 파기하거나 되돌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불평등과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정부의 역할을 ‘지양해야 할 과도한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어떻습니까? 저는 주병기 교수의 진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민주화 구현, 사회적 양극화 해소, 편법과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라는 국민의힘 강령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한달 만에 덜컥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 이유가 뭘까요? 경제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자들과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관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보수주의 원조로 불리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진정한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수는 본래 ‘따뜻함’을 내포하는 이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원리를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 이긴 ‘보수 대통령’ 되려면

“윤석열 정부의 성패는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큰 고통을 피하기 어렵다. 급한 대로 양극화를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책도 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약자에 대한 따뜻함을 잊지 않고, 아픔을 같이 나누면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자유·시장·경쟁·성장·실용·효율 등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류의 ‘신자유주의 레코드판’을 틀면 민심이 등을 돌린다.”

6월21일치 <중앙일보> ‘고현곤 칼럼―경제위기 때 필요한 건 자유보다 따뜻함’의 결론 부분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 몰아닥친 경제위기에 약자들의 편에 서서 강자들의 횡포를 물리친 ‘진짜 보수주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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