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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도 못 구한다는 ‘이니시계’의 모든 것

등록 :2017-09-20 11:00수정 :2017-09-20 11:14

정치BAR_‘문 대통령 시계’ 열풍

‘문재인 시계’
‘문재인 시계’

청와대 손님·국외행사 답례품
한달에 1000개씩 1년치 선주문
“대통령 감사 뜻 전할 때만 지급”
보훈가족·세월호 유족 등 받아

방문한 여당 의원들에도 안 주고
청 직원도 생일 때나 받을 수 있어
출입기자들에겐 고심 끝에 지급
지지자들 “100만원 넘어도 사겠다”

이명박·박근혜 시계도 한때 인기
정권 말기·퇴임 이후엔 찬밥 신세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인터넷 최대 카페 ‘중고나라’엔 최근 ‘문재인 시계 고가에 삽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100(만원) 이상’이라도 좋고, ‘파는 사람이 있는 곳까지 갈 테니 시간 상관없이 문자를 달라’는 이 글엔 19일까지도 답글이 달리지 않고 있다. 이 카페에서 ‘문재인 시계’로 검색하면 나오는 나머지 8개 게시글 중 7개가 ‘나도 사고 싶다’는 내용이다. 나머지 1개는 ‘100만원에 판매하겠다’는 글을 믿지 말라는 ‘사기 주의 경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간 손목시계, 이른바 ‘이니시계’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 한창이다. 청와대 직원들과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은 물론 문 대통령의 열광적인 지지자들까지 ‘이니시계를 구할 방법이 없느냐’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 달에 1000개 즉 1년치 1만2000개를 미리 주문해두고 꼭 필요할 때만 소량주문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깐깐한 물량 관리를 하는 탓이다.

지금까지 이 시계가 몇 개나 시중에 풀렸는지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를 방문했던 보훈 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할 당시 병원에서 만난 환자·가족 등이 시계를 받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 행사에 참석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도 건네졌다.

청와대 내규는 청와대에 초청받은 사람이나 외국에서 온 손님, 대통령이 국외로 나가서 동포간담회 등 행사를 하는 경우 등에 한해 답례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행사에 초청받았다고 해서 모두 시계를 받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 26일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던 여당 의원들 모두 시계를 받지 못했다. 청와대 직원들의 빗발치는 ‘시계민원’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을 걸고 시계를 구해보겠다”며 나섰지만 ‘정도만 걷는 이정도 비서관’은 원칙을 내세우며 일단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이 비서관이 내세우는 원칙은 “대통령 시계는 말 그대로 답례품”이라는 것이다. 이 비서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 때 한정해 지급하는 게 맞다”며 “내규를 포괄적인 기준으로 하되, 그때그때 사안별로 지급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기준에 따라, 이 비서관은 최근 연평해전·천안함 사건의 참전군인 및 희생자 유가족 91명에게 남녀 손목시계 한 쌍을 배포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선적으로 챙겼으면 좋겠다”는 문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이런 깐깐한 기준을 뚫고 시계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보좌관회의에서까지 ‘토론’을 벌이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뒤였다. 당시 토론에선 “자칫 ‘권언유착’처럼 비칠 수 있는 특혜가 아니냐”는 근본적 문제 제기부터, “김영란법(청탁금지법)에 저촉되는 게 아니냐”는 법률적 고민이 오갔다고 한다. 청와대의 소식 등을 전하며 국민과의 가교 역할을 하느라 100일 동안 고생한 기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난 뒤에도, ‘시계를 하나만 주느냐, 남녀용 한 세트로 주느냐’를 두고 한참 토론이 진행됐다고 한다. 결국, 김영란법이 정한 선물 한도액(5만원)에 맞게 1인당 1개씩만 지급하기로 결정됐다.

‘대통령 시계’가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끄는 건 문 대통령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권력과의 연줄을 과시할 수 있는데다 손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원가와 상관없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특히 지지율이 높은 임기 초반일수록 그 현상은 더하다.

‘노무현 시계’
‘노무현 시계’

‘박근혜 시계’
‘박근혜 시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축하하며 취임 초부터 다량의 대통령 시계를 풀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모자란다는 듯, 임기 초반인 2009년 서울 청계천 노점 상인들이 대통령 서명을 담은 모조품 시계를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선거의 여왕’으로 통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시계는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부를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집권 2년 차인 2014년까지만 해도 중고나라 등에선 ‘박근혜 시계’를 ‘사겠다’는 게시글이 주를 이뤘다. 특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홍문종 당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원내외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에게 대통령 손목시계 10개씩을 선물하며, ‘대통령 시계를 (선거에) 잘 활용하라’고 한 것이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 시계의 인기는 정권의 성쇠와 함께 간다. 레임덕이 찾아오는 정권 말기나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찬밥 취급 받거나 헐값에 내다 팔리기 일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등 인기가 추락하면서, 이명박 시계는 중고시장에서 원가도 안 되는 1만원에 매물로 나오는 굴욕을 맞고 있다. 심지어 판매 희망 글엔 ‘사겠다’는 말 대신 ‘줘도 안 찬다’는 등의 비난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공직기강을 담당하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와대 직원들에게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문재인 시계’를 차고 다닐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일하자”는 말을 자주 한다. 조 수석은 최근 한 사석에서 “대통령 임기 중엔 결코 ‘이니시계’를 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지 않으면 그 시계가 무슨 소용이냐며 일에 집중하자는 다짐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퇴임해 경남 양산 자택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5년 동안은 꼭 문재인 시계를 차고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정치BAR_‘이니시계’ 어떻게 만들어졌나

원가 4만원…고 신영복 선생 글씨로 ‘사람이 먼저다’ 새겨

‘이니시계’의 원가는 4만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대통령의 답례품이란 본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청와대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이전엔 청와대 살림을 도맡는 총무비서관과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을 지근거리에서 각각 보좌하는 제1·2부속비서관 등 세 명이 서너가지 샘플을 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대통령의 서명을 새기는 방식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시계 디자이너, 전통공예가 등을 포함한 내외부 평가자문단을 꾸렸고,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에서 추천한 6개 기업과 협의를 거쳐 제작업체 선정에서부터 디자인까지 꼼꼼히 챙겼다. 시계는 화려한 장식적 요소를 버리고 문자판을 백색 자개로 만들었다. 돔형 둥근 유리를 씌우고 양가죽 시곗줄을 달아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뒷면엔 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사람이 먼저다’를 새겼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모던한 디자인이라 젊은 사람들이 차고 다니기에도 부담이 없다. 자개 문자판 때문에 시계를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달라져서 매우 예쁘다”고 흡족해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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