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갈등
문재인-안철수 갈등

팬덤 문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화 현상’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팬덤은 퍼내틱(fanatic)의 팬(fan)과 ‘영지’, ‘나라’를 의미하는 덤(dom)의 합성어입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부르는 개념입니다. 1980년대 컬러텔레비전 보급으로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팬덤이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고 팬덤문화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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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팬덤문화의 시작을 1980년대 가수 조용필을 따라다니던 ‘오빠부대’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서태지, 젝스키스, 에쵸티(HOT) 팬클럽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젝스키스와 에쵸티 팬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러차례 격돌했습니다. 이들이 실제로 벌였다는 패싸움은 팬덤문화의 상징적 장면으로 ‘응답하라 1997’ 드라마에도 소개된 일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따라다니며 응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경쟁 상대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은 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더 팬’이라는 스릴러 영화가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의 광적인 팬이 자신의 우상이 슬럼프에 빠지자 경쟁관계인 선수를 찾아가 시비를 벌이다가 그 선수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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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이 발달한 요즘은 팬들의 활동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연예인과 팬클럽의 평판이 함께 좌우되기도 합니다. 특정 연예인의 팬들이 경쟁관계인 연예인을 지나치게 욕하면 특정 연예인과 그 팬들의 평판이 같이 나빠진다는 뜻입니다.

팬덤문화 얘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는 정치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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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치인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처럼 대중들의 인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유권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정치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정치인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처럼 다른 정치인들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정치는 선거로 승패를 분명히 결정짓기 때문에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한 분야입니다.

셋째, 연예 및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정치인의 팬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치인을 비난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경쟁이 훨씬 치열하므로 다른 정치인에 대한 비난의 내용과 강도가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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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7월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영삼과 김대중씨가 서울 서린호텔에서 조찬회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6년 7월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영삼과 김대중씨가 서울 서린호텔에서 조찬회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7년 6월항쟁을 실제로 주도한 사람들은 대학생, 넥타이 부대,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6월항쟁을 통해 떠오른 대중 정치인은 김영삼, 김대중이었습니다. 박정희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해 온 두 대중 정치인이 항쟁에 가세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두 사람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마침내 6·29 선언과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두 대중 정치인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통령 후보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은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후보로 나섰습니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정권교체를 희망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김영삼 지지자와 김대중 지지자로 갈렸습니다.

‘후보 단일화’(후단)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판적 지지’(비지)는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를 의미했습니다. 재야는 ‘후단’과 ‘비지’로 갈렸습니다.

지역에 따라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도 갈라졌습니다. 부산·경남은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후보를 ‘영삼이’라는 애정이 담긴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호남은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후보를 ‘선생님’이라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불렀습니다.

선거가 격화하면서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를 격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주장이 터져 나왔습니다. 김영삼 지지자들은 김대중 후보를 ‘빨갱이’라고 했고, 김대중 지지자들은 김영삼 후보를 ‘바람둥이’라고 했습니다. 양쪽 지지자들이 민정당에서 만든 흑색선전으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급기야 양쪽 지지자들은 “김대중(김영삼)이 당선되느니 차라리 노태우가 당선되는 게 낫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공작팀은 양쪽 지지자들의 이런 반목을 놓치지 않고 계속 틈을 벌려 나갔습니다.

최종 선거 결과는 민정당 노태우 후보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27.04%,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 8.06%였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은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정권을 넘겨준 것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당 지지자들도 두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바람에 절호의 정권교체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두 당사자 못지 않은 심한 자책과 공황에 빠졌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4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추모객들이 묘역을 찾아 분향도하고 추모관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의 추억과 기념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해/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4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추모객들이 묘역을 찾아 분향도하고 추모관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의 추억과 기념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해/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두 대중 정치인에 이어 지지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당선이 유력한 서울 종로를 떠나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에게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이 붙었고 우리나라 정치사상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결성됐습니다. 노사모의 지지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탄생에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은 물론입니다.

노사모라는 팬클럽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을 세간에서는 ‘노빠’라고 불렀습니다. 정치인의 성 뒤에 ‘빠’를 붙이는 빠문화의 시작입니다.

노빠 뒤로 지금까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지지자들인 ‘유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을 의미하는 ‘문빠’가 차례차례 나타났습니다. 강도는 약하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지지자들을 뜻하는 ‘안빠’도 출현했습니다.

네 개의 ‘빠’ 중에서는 역시 노빠가 가장 강력한 것 같습니다. ‘노빠’들은 남들이 자신들을 ‘노빠’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부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빠나 안빠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빠나 안빠라고 부를 때도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받아 공직자로 선출되는 사람입니다. 유권자들의 지지는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동력입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은 그 자체로 무척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경쟁 상대인 다른 정치인에 대해 맹목적인 반감을 갖고 지나친 비난을 가하는 것은 좀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현상은 여당이나 야당 어느 한쪽에 유력한 두 사람의 정치인이 존재할 때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1987년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경우가 딱 그랬습니다. 양쪽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를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보다 더 미워했습니다.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경우에도 비슷한 현상이 잠시 있었습니다. 2007년 정동영 문국현 사례도 비슷했습니다.

현재의 여권도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명박 박근혜 세력으로 패가 갈려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근혜 후보의 영남대 관련 비리 의혹을 한겨레 기자들에게 상세히 제보한 일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겨레 기자들이 이명박 후보의 이른바 비비케이 사건을 취재하는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겨레 기자들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치열한 경선을 거치며 양쪽 지지자들의 상대 후보에 대한 감정이 그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는 얘깁니다.

4·13 총선 결과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가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지지도가 올라가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안철수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일부 극성스런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와 상대 후보 지지자들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심한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1차 표적은 기사를 쓴 기자들이나 언론사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조금이라도 비판하거나 상대 후보를 조금이라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고 생각하는 기자나 언론사에 공격을 퍼붓습니다.

기사나 칼럼을 쓰는 기자들도 독자들의 평가나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자들이 실제로 편파적인 기사를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기자 공격은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그 양상이 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정치막전막후’에서 안철수 대표가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1위로 올라선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대선주자로서 안철수 대표의 자격을 따져본 일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누군가 매우 심한 욕설을 댓글로 달았습니다. 기사가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설명도 없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로서 담당 부서에 이의를 제기해 다음날 댓글을 삭제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댓글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게 회색 정치인이고 위험한 기자가 회색 기자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독자들을 호도하는 일은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바에는 차라리 박근혜가 종신 대통령 하는 게 낫다.”

“기자질도 못할 것 같네. 자기가 지지하는 자에게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어용으로 몰아붙이고 해당 언론사를 조중동과 함께 묶어서 난도질하는….”

이메일도 몇 개 받았습니다.

“지금껏 많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표가 10% 가량 일관되게 앞섰구만 그땐 일언반구 모르쇠 딴청을 부리더니 4개 조사 중 딱 하나 안철수 1위한 갤럽조사만 가지고 대단한 것마냥 의미를 두며 되지도 않는 객기를 부리며 조목조목 따지기까지 하네.”

“안철수가 정치적 경험이나 식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전현직 대통령들은 정치적 경험과 식견이 대단해서 정치했나. 당신 신문사가 애정을 쏟는 문재인은 정치적 경험과 식견이 충분한 자인가. 비례대표를 주고 부정부패 인사를 데려온 문재인에 대한 기사는 하나도 없더군.”

앞의 것은 문재인 지지자가 보낸 것이고, 뒤의 것은 안철수 지지자가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재인 지지자 중에서 어떤 사람은 저를 ‘안빠’라고 욕하고, 안철수 지지자 중에서 어떤 사람은 저를 ‘문빠’라고 욕합니다. 기자를 하면서 처음 겪는 일도 아니어서 그냥 감수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문재인 안철수

그런데 요즘 문재인과 안철수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가 상대 후보와 상대 후보 지지자들을 향해 내뿜는 비난과 공격은 확실히 좀 지나친 데가 있습니다. 여러 언론사의 정치 기사에 달린 댓글을 찾아보았습니다. 워낙 거칠고 악의적인 내용이라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체로 문재인 지지자들의 주장은 ‘안철수 대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사업가 출신이라 대통령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철수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과 손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안철수 지지자들의 주장은 ‘문재인 전 대표는 친노패권주의의 가해자이기 때문에 호남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선주자로서 표의 확장성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걱정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열혈 지지자들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와 비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뭐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팬이 되는 것과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비판은 정치 행위로서 공동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맹목적인 증오는 자칫하면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처음엔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상대방을 증오하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증오 자체가 증오를 낳는 원리입니다.

맹목적인 추종보다는 맹목적인 반감이나 증오가 더 문제입니다. 특정 정치인과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평판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더 크게 보면 이런 행위는 정치혐오증과 반정치주의를 확산시켜 정치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또 있습니다. 현재의 여권 세력이 계속 집권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집단의 이간 공작 가능성입니다. 인터넷 댓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대표 어느 한쪽을 지지한다면서 상대방에게 극도로 심한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고용한 ‘알바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소통본부장을 지낸 홍종학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악플은 악순환, 선플은 선순환’이라는 슬로건으로 ‘백만시민 선플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관계망에 난무하는 욕설과 비방을 몰아내 정치혐오를 극복해보자는 운동입니다. 홍종학 의원은 “선플운동 이후 알바단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 놀란 일이 있다”며 “알바단의 특징은 극도의 혐오감을 주는 욕설을 퍼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