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윌밍턴/AP 연합뉴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될 조 바이든 당선자는 한·중·일 3개국이 모인 이 ‘말 많고 시끄러운 동아시아’에서 어떤 대외 정책을 펴게 될까. 미래 패권이 걸린 미-중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역대 ‘최악의 상태’로 방치돼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두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해 다양한 압박을 해올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국에겐 “미국에 맞서는 편에 베팅하지 말라”며 동맹에 좀 더 충실한 태도를 보이도록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이 어떤 모습일지, 추측해 볼 근거가 되는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을 소개한다.

1.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는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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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참배를 해선 안 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
“갈지 말지는 내가 판단하겠다.”(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7년 전인 2013년 12월12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은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밤 10시40분(일본 시각)부터 한 시간에 걸친 긴 통화를 시작했다. 일본의 지난 침략을 사실상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인 아베 총리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에이(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만류하러 나선 것이다.

한-일 간의 치열한 역사 갈등을 완화하는데 별다른 관심이 없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오바마-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소중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건전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다. 2013년에도 지금처럼 한-일 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 지금은 일본이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먼저 ‘납득할 만한 조처’를 취하라며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있지만, 당시엔 한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성의 있는 선 조처’를 요구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퇴짜 놓고 있었다. 미국 입장에선 정말 골치 아픈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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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화가 이뤄지기 직전인 6일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한-중-일 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힘써달라”고 요구했다. 바이든 당선자가 이렇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사흘 전인 3일 아베 총리와 만남에서 한-일 역사 현안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입장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바이든 당선자에게 “한-일 관계에서 지나친 대응이 있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의 긍정적인 발언을 확인한 바이든 당선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러니, 한국도 양보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전격 참배하면, 바이든 당선자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괜한 소리를 늘어 놓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통화에서 아베 총리는 ‘참배하지 않겠다’는 약속 대신 “알아서 판단하겠다”는 반응에 그쳤다. 그리고 바이든 당선자의 우려대로 그해 12월26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분노한 주일 미국 대사관은 참배가 이뤄진 지 30분 만에 “일본의 지도자가 주변 국가와 긴장을 악화시키려는 행동을 취한 것에 미국 정부는 실망했다”는 이례적인 담화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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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또 하나 재미 있는 일화가 따라 붙는다. 스가 요시히데 현 총리(당시 관방장관)는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를 끝까지 반대했다. 결국, 뜻을 꺾지 못한 스가 총리는 참배 30분쯤 전 이병기 당시 주일 한국대사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일본어에 익숙지 못한 이병기 대사가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소식을 전달받고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자 당시 앞에 서 있던 김원진 정무공사가 “대사님, ‘쓰요쿠 고기시마스’(강하게 항의합니다)라고 하세요”라고 조언했다. 스가 총리는 이병기 대사가 일본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 한달에 한번은 꼭 식사를 할만큼 흉금을 터놓은 친한 사이였다. 이런 신뢰관계는 한-일이 2015년 12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2·28 합의에 도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후 이병기 실장은 이후 매우 큰 고초를 겪게 된다.

2. 그렇지만 더 소중한 것은 한-일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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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연설은 매우 능숙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아베 총리의 2015년 4월 미 의회 연설에 대해)

바이든 당선자가 한-일 간의 역사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인권 현안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에 대해 한국의 편을 들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바이든 당선자에게 중요한 것은 한-일 중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결국 ‘미국의 국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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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선 “실망했다”는 표현으로 강한 경종을 울렸지만, 2015년에 접어들며 중국의 거센 부상에 맞서려면 미-일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게 된다. 결국, 바이든 당선자는 주변국에 명확히 사과하지 않는 아베 총리의 ‘애매한’ 역사인식을 추인하고 만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2015년 4월29일 열린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 연설에서 일본이 과거 미국에 끼친 피해인 진주만 공습, 필리핀에서 잡은 미군 포로들에 대한 학대 사건인 바탄 죽음의 행렬 등을 열거하며 “역사는 실로 돌이킬 수 없이 가열한 것이다. 저는 깊은 회오를 가슴에 안고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묵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명확히 표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화 달리 ‘사죄’로 읽힐 수 있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베 총리는 “1980년대부터 한국, 대만, 아세안 국가들이 발전하고 이후 중국이 부흥했다. 그때 일본이 헌신적으로 자본과 기술을 투자해 그들의 성장을 도왔다”는 자화자찬을 입에 담았다. 한·중 양국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바이든 당선자는 “아베 총리의 연설은 매우 능숙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 (과거사에 대한) 책임이 일본 쪽에 있다는 것을 매우 명확히 했다”고 평가했다.

사실,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을 빨리 풀어야 한다는 미국의 압박이 시작된 것은 2015년 초부터였다. 미 국무부의 3인자였던 웬디 셔먼 사무차관은 2015년 2월27일 워싱턴 카네기 평화재단에서 열린 연설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 지도자든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서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발언을 입에 담았고,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4월8일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한-일 간 “협력에 의한 잠재적 이익이 과거에 있었던 긴장이나 지금의 정치적 상황보다 중요하다. 우리 세 나라는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12·28 합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국은 2016년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협정과 2017년 초 ‘사드 배치’를 통해 한-미-일 3각 동맹 체제 구축을 향한 결정적인 한발을 내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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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국에 대한 단호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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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맞서는 편에 배팅하는 것은 좋지 않다.”(2013년 12월 방한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는 중국의 지도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적이 있고, 우리가 무엇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잘 안다.”(미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3~4월호 기고)


바이든 당선자는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12년, 부통령으로 8년을 보낸 미국 최고의 ‘외교 전문가’로 꼽힌다. 그런만큼 현재 미국 외교의 가장 큰 숙제인 미-중 갈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여러 지면을 통해 나름 정리된 해법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가 올 3~4월치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 “중국의 지도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적이 있다”고 쓴 것처럼 그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0년대 초반부터 우정을 쌓은 ‘옛 친구’다.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을 무렵 바이든 당선자는 후진타오 주석 아래서 최고 지도자 수업을 받던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과 처음 만났다. 둘은 2011년과 2012년 서로를 초청해가며 친교를 나눴다. 2012년 2월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땐 함께 엘에이(LA) 레이커스 농구경기를 관전했고, 2013년 12월엔 베이징에서 중국 국가 주석과 미국 부통령의 자격으로 중국이 동중국해에 일방적으로 확장한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놓고 힘겨운 회담을 진행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대중국, 대아시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정책의 큰 기조는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점이라면 ‘미국 우선주의’ 대신 ‘동맹국과의 협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의 대중 정책에 대해 “미국이 중국 혹은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한 미래 경쟁에 이기기 위해선, 혁신적 첨단부분(edge)을 더 날카롭게 해야 하고 잘못된 경제 관행과 불공정을 줄이기 위해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적었다. 이런 자세는 넉달 뒤인 8월 공개된 민주당의 정강정책에도 그대로 확인된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 정강정책의 아시아-태평양 항목에서 “미국은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우리의 공통된 번영, 안전, 열린 태평양 세계를 만든다는 가치를 추진하기 위해 우리 동맹국, 동반국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국에 대해선 “중국에 대한 접근은 미국의 국익과 우리의 동맹의 이익에 의해 추진될 것이고, 그 추진 방식은 우리 사회의 개방성, 경제의 역동성, 우리의 가치를 반영하는 국제적인 규범을 형성하고 집행하는 우리 동맹의 힘에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글에서 바이든 당선자가 꾸준히 강조하는 것은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 우리의 동맹과 동반국들과의 협력’ 등의 표현이다.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며 미국의 국익을 실현하겠다는 바이든 당선자의 사고 방식은 지난달 30일 <연합뉴스> 기고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의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는,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다.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에 관여하고 비핵화한 북한과 통일된 한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결국, 바이든 당선자는 중국과 패권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노련한 방식으로 한국에 긴밀하고 다층적인 협력을 요구해 올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게 미-중 사이에서 더 명확한 입장을 보이라고 요구하거나, 한-일 관계를 서둘러 개선하라는 난처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도 크다. 실제, 바이든 당선자는 2013년 12월6일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에서 “미국에 맞서는 편에 베팅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바이든, 미 대선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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