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12·28 한-일 합의에 따라 세워진 이른바 ‘화해·치유 재단’(재단)에 일본 정부가 출연할 10억엔(108억원)을 둘러싸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10억엔의 출연시기·성격·사용처 등에 대한 한-일 사이의 합의 내용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별다른 설명 없이 오락가락하며 혼돈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지난 12일 오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전화회담을 통해 어떤 ‘큰 틀의 합의’에 이르렀는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출 방식과 사용처
일 “의료·간호 용도로 상정
현금 직접 지급방식과 달라”
외교부는 “더 논의해야”
불분명한 돈의 성격
일 정부 “배상금 아니다” 주장
한국 “배상금 성격 있다” 모호
이달 안에 출연되나
일 언론 “박 대통령 연설에 넣게
한국쪽서 광복절 이전 결정 요청”
외교부 “특정시점 요구한 적 없어”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재단이 10억엔을 어떤 방식으로 지출하느냐다. 기시다 외무상은 12일 윤 장관과 전화회담 직후 일본 기자들에게 “10억엔은 전 위안부들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지출이다. 이 점에 대해 합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10억엔이 ‘사업자금’이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현금으로 직접 지급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일본 외무성 한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일률적으로 금액을 정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는 방식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9일 한-일 국장급 협의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현금 지급이 안 된다는 것(일본 쪽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당국자는 이보다 앞선 지난달 22일 “일본 정부 예산으로는 순수 사업 비용으로 (사용)하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사업 비용’은 직접 현금 지급 방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외교부는 12일 한-일 외교장관 전화회담 뒤 내놓은 공식 보도자료에는 ‘일시금 지급’과 관련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또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14일 “우리는 그런 방향(일시금 지급)으로 하려고 한다. 일본과 더 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10억엔의 사용처와 관련해 기시다 외무상은 “재단이 전 위안부(피해자)들과 가족들의 필요를 조사해서,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용도의 범위 내에서 자금을 지출하는 것으로 한다”며 “일본으로선 의료와 간호 관계 등의 용도를 상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본 쪽은 피해자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의료·간호비에 한정해 사용했는지 영수증을 제출받는 안까지 제안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재단 사업의 구체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재단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정해진 바가 없다”며, 일본 쪽과 다르게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의료와 간호 등은 이미 한국 정부가 다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피해를 치유하는 사업과 상징적인 기념물을 만드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억엔의 현금 지급 여부와 사용처에 대한 한-일 정부 간 이견은 무엇보다 이 돈의 불분명한 성격 탓이다. 기시다 외무상은 12일 윤 장관과 전화회담 직후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청구권은 법적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10억엔을 ‘치유금’이라고도 규정하기도 했다. <교도통신>은 “(일본 쪽이 한국 정부에) 출연금은 배상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불명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12·28 합의에 따른 10억엔’이라고 부를 뿐, 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위안부 배상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며 “10억엔엔 배상금 성격이 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10억엔 출연 시기 역시 일본 쪽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12일 양국 외교장관 전화회담 직전 대부분 일본 언론은 “이달 안에 출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 나아가 <아사히신문>은 13일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된 광복절 이전에 10억엔 출연과 관련한 큰 틀에서의 합의를 양국 당국자가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한국 쪽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을 미래지향적 내용으로 할 수 있도록 일본 쪽에 15일 이전에 결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꺼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기시다 외무상이 일본 정부는 국내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10억엔을 신속하게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언급했다”고만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쪽에 광복절 같은 특정한 시점을 요구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소속 의원 10명은 15일 독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단장인 ‘국회 독도방문단’은 박명재·성일종·강효상·김성태·이종명·윤종필(이상 새누리), 김종민·황희(이상 더민주), 장정숙(국민) 의원으로 구성됐다. 일본 쪽은 한국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일축’했다.
김진철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