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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일방적 구애” 대일 저자세 외교…과정도 결과도 부적절했다

등록 :2022-09-23 07:00수정 :2022-09-23 14:32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행사장에서 약식 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행사장에서 약식 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흔쾌히 합의됐다”던 미국 뉴욕에서의 한-일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우리 정부는 약식이지만 ‘정상회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일본 쪽은 비공식적 ‘간담’으로 규정했다. 회담 결과는 양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선에 그쳤다. 정상 간 만남 추진 과정과 결과 모두 부적절했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약식 회담은 첫걸음부터 삐걱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5일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한-일 간) 흔쾌히 합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쪽에선 곧바로 “들은 바 없다”, “합의 사실 없다”고 부인했다. 양국 간 최대 쟁점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뚜렷한 해법이 도출되지 않은 탓이다.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없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치밀한 사전준비 없이 가장 강력한 외교 수단인 정상회담 카드를 섣부르게 꺼내들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일본 내부 정치 상황도 문제였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국정 지지율이 최근 취임 이후 처음으로 20%대로 떨어졌고,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에 대한 반대 여론은 과반을 훌쩍 넘어 60%대를 기록했다. 기시다 총리로선 확실한 지지기반인 ‘반한·혐한’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상회담에 나설 국내 정치적 동기가 약하다는 뜻이다.

이같은 내부 기류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 사실처럼 발표하자, 일본 쪽에선 “불쾌하다”는 격한 반응까지 내놨다. 회담 시점과 장소는 막판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윤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낮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뉴욕 맨해튼의 행사장으로 찾아가 만나는 형식을 취하게 됐고, 대통령실은 회담이 시작된 뒤에야 이를 기자들에 알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회담을 하기까지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일본 쪽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회담 형식에 대해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현지 일정 변경에 따른) 연쇄 파생효과로 한-일 정상회담도 상당히 불투명해진 가운데에서 급작스럽게 일정이 잡히다 보니까 약식 회담 형식을 띄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정이 이렇다보니, 회담에 대한 한-일 간 평가도 엇갈린다. 외교부 당국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일 정상회담이고, 양국 관계 개선과 주요 현안 해결 위한 정상 간 의지와 의견을 교환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라고 평가했다. 회담 성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반면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따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이 보이지 않은 가운데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공식회담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며 “다만,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 쪽의 자세를 평가해 비공식 간담으로 대화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쪽이 ‘배려했다’는 말로 들린다.

이를 두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구체적 의례조차 확정하지 않은 회동에 불과했다. 일본 총리가 있는 곳으로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가까스로 성사된, 기껏 30분의 만남은 일방적 구애로 우리 태극기 설치도 없이, 간신히 앉은 비굴한 모습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설익은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한 배경에는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이를 위한 한-일 관계 개선이란 윤 대통령의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윤 대통령 집권 직후부터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지나치리만치 속도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쪽에 사전 통보도 없이 일본 가해 전범기업 자산 강제매각(현금화)을 늦춰달라는 취지로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피해자 중심주의’란 대원칙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한국이 해법을 마련해오라”는 기존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한-일 관계 파탄의 책임이 우리 쪽에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정상회담 성사에 집착해 지나치게 앞서 나가면서, ‘저자세·굴욕 외교’란 비판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전문가인 이기태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장은 “일본은 강제동원 문제 해법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입구를 막아놓은 상황” 이라며 “전임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구체적 정책 대안 없이 서두르다 일본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쪽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국내적 합의가 쉽지 않을 게 뻔한 상황”이라며 “양국 정상 모두 국내적으로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당분간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정인환 엄지원 기자, 도쿄/김소연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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