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2022년도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2022년도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국과 러시아가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정부의 대응은 눈에 띄게 ‘신중’ 기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공화국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병력 투입을 발표하자, 미국·유럽연합(EU)·독일·영국·일본·캐나다·호주 등이 러시아 제재 조처를 발표하는데 한국 정부는 ‘제재’를 입에 올리지 않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대응 기조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영토 보존 존중”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적극 동참” 측면에선 미국 등과 보조를 함께한다. 러시아를 향해 “침공”이나 “규탄”이란 직접 비판을 삼가고, ‘제재’ 조처를 내놓지 않은 점에서 다르다. ‘제재’에 앞장서지 않되 “신북방정책 중점 협력 대상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힘을 보태겠다는 기조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대비 중”이라면서도 “군사적 지원이나 파병은 우리한테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며 “미국 등 각국의 대응이 어찌 될지에 따라 우리 대응도 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재’ 선회 가능성을 완전 차단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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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런 ‘신중’ 기조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22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를 통해 공식화했다.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문 대통령의 진단처럼, ‘안보’와 ‘경제’를 두루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왜 이런 대응 기조를 선택했을까?

첫째,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악영향 차단이다. 러시아는 ’거부권’을 지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6자회담 당사국으로 한반도 문제에 발언권이 크다. 더구나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대화·협상을 통한 포괄적·단계적 해결이라는 한국의 해법을 지지한다. 2008년부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어온 한-러의 ‘전략적 공조’다. 문 대통령이 연석회의를 마치며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특별히 주문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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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정부 교체기 한-러 관계 관리 필요성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대통령 특사 외교’를 펼치는데, 이때 러시아는 미국·중국·일본과 함께 반드시 포함되는 ‘주변 4국’으로 분류된다. 대선이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러 관계가 나빠지면, 새 정부 출범 직후 대러시아 외교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부 교체기라는 점을 당연히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셋째, 러시아 진출 한국 기업 피해 최소화와 에너지·원자재 등 공급망 차질 회피 필요성이다. 러시아는 한국의 열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삼성전자·현대차·엘지전자 등이 현지에 공장을 가동하고 롯데호텔·롯데백화점이 운영되는 등 173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아홉 번째 수입 대상국인데, 나프타·원유·유연탄·천연가스 등 주로 에너지·원자재 중심이다.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한테는 중요한 무역 상대다. 정부는 사태가 장기화해 에너지·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비축 원유의 일부를 시중에 풀고 무연탄·곡물(사료용) 등의 대체 수입선을 마련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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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를 앞세우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이런 신중 기조는, 한국사회 한편의 오해와 달리 ‘진보 정권의 편향’이라 보기 어렵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합병에 맞서 미국이 국제사회에 대러 제재 동참을 호소했을 때, 한국 정부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정부는 보수 색채가 짙은 박근혜 정부였다. 박근혜 정부는 크림 사태 때 ‘제재’는 하지 않고 한-러 고위급 교류를 일시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응 수위를 조절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