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밤 ‘개선청년공원’에서 젊은 남녀가 배그네(바이킹) 놀이기구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7일 밤 ‘개선청년공원’에서 젊은 남녀가 배그네(바이킹) 놀이기구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7일 밤 ‘개선청년공원’을 찾은 청년들이 무지개 모양의 공원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7일 밤 ‘개선청년공원’을 찾은 청년들이 무지개 모양의 공원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광고

이달 초부터 북한을 방문해 취재 중인 <통일티브이(TV)> 진천규 대표가 ‘평양의 현재’를 담은 글과 사진을 보내왔다. 한반도에 긴장의 그림자가 머리를 들기 시작했지만, 평양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더 필요한 일이다. 진 대표가 평양에서 ‘이메일’로 글과 사진을 서울로 바로 보내온 것도 북한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오늘도 평양 시내 취재를 마치고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평소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반짝이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2017년 가을부터 평균 한두달에 한번꼴로 북녘을 취재하고 있는 필자의 눈에도 요즘 평양의 밤은 그 전보다 되레 밝아졌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2019년 5월 이곳 주민들의 말대로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세계적인 제재” 중에도 평양 시내에 자동차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듯 보이고, 상점의 물건들도 이들 주민들 말로 “조선 상품”으로 넘쳐나고, 정전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놀라운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철주사범대학 정치사회학부 정기풍(63) 교수는 “우리는 지난 시기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는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고 답했다.

광고
광고

지난해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시의 야경을 강성국가의 수도답게 황홀하고 희한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야경은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대외적으로는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뒤 북한은 희천, 백두산영웅청년, 청천강 등의 수력발전소를 완공했고, 국제 제재로 인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유 대신 석탄을 사용하도록 기존 발전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으며, 태양광 이용을 장려하는 등 전력 공급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2012년 이후 건설된 평양 시내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 등에 늘어선 초고층 건물을 밤에 멀리서 보면 별이 내려앉은 듯하다.

광고
9일 밤 평양 옥류교 위에서 바라본 창전거리 살림집(아파트) 조명이 화려해 보인다.
9일 밤 평양 옥류교 위에서 바라본 창전거리 살림집(아파트) 조명이 화려해 보인다.

12일 밤 9시 무렵 평양시 중구역 평양호텔 5층에서 보이는 영광거리 주변 살림집(아파트)의 가정집마다 불이 켜져 있다. 최근 평양에서 체류하는 동안 정전이 된 일은 거의 없었다.
12일 밤 9시 무렵 평양시 중구역 평양호텔 5층에서 보이는 영광거리 주변 살림집(아파트)의 가정집마다 불이 켜져 있다. 최근 평양에서 체류하는 동안 정전이 된 일은 거의 없었다.

7일 밤 평양 ‘개선청년공원’을 찾은 젊은이들이 수십미터를 순식간에 오르내리는 급강하탑(자이로드롭)을 타고 즐거워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7일 밤 평양 ‘개선청년공원’을 찾은 젊은이들이 수십미터를 순식간에 오르내리는 급강하탑(자이로드롭)을 타고 즐거워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모란봉에서 평양시내 야경을 내려다본다.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옥류교와 청류다리, 주체사상탑 앞을 반짝이며 오가는 무지개호 유람선, 인민대학습당 앞의 김일성광장, 엘이디(LED) 조명쇼를 펼치는 류경호텔, 대동강변 가로등이 어우러져 화려한 밤 풍경이 만들어진다.

개선문 근처에 있는 개선청년공원은 저녁에 더 활기를 띠는 평양의 밤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색색으로 조명을 밝힌 놀이기구들과 조명분수, 원색 빛으로 꾸며진 바위와 나무, 정자, 상점이 늘어서고 사람들의 비명과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친구들과 놀이공원을 찾은 김성광(22·평양 서성구역)씨는 급강하탑(자이로드롭) 기구를 타고 소리지르는 친구들의 모습을 손전화(스마트폰)로 사진 찍느라 바빴다. 그는 “제재는 걱정하지 않는다. 물과 공기만 있으면 몇십년도 더 버틸 수 있게 자립경제를 완성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광고

7일 밤 평양 ‘개선청년공원’을 찾은 가족이 ‘전자오락관’에 있는 승용차경주 게임기에 아이와 함께 앉아 운전대를 잡고 기뻐하고 있다. 북녘의 보통 젊은 부부의 모습이다.
7일 밤 평양 ‘개선청년공원’을 찾은 가족이 ‘전자오락관’에 있는 승용차경주 게임기에 아이와 함께 앉아 운전대를 잡고 기뻐하고 있다. 북녘의 보통 젊은 부부의 모습이다.

평양 대성백화점 3층 가전제품 코너에서 5일 오후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전자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티브이(TV)
평양 대성백화점 3층 가전제품 코너에서 5일 오후 휴일을 맞은 시민들이 전자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티브이(TV)

최근 평양 시내 야경의 명소는 류경호텔이다. 105층 330m 높이의 호텔은 아직 개장 전이지만, 건물 외벽 전체가 스크린이 되어 매일 밤 10만개 이상의 엘이디 조명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4월 태양절을 기념하며 처음으로 야간에 조명쇼를 시작했는데, 피라미드형인 건물 꼭대기에는 인공기가 형상화되어 평양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조명쇼는 북한의 역사를 다양한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고, ‘주체사상’ ‘3대혁명’ ‘기술혁명’ ‘일심단결’ ‘자력갱생’ ‘최후승리’ 등의 구호가 원색의 배경 위로 깜빡인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이제는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화해를 향해 가는 듯 보였던 북-미 관계가 다시 힘겨루기로 들어서는 모양새다. 북한은 평화와 안전은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보장된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보내고 있고, 미국은 과거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전세계의 대북 제재를 단속하면서 북한이 미국식 비핵화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 복잡해지는 듯한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의 험난함 때문인지, 오늘 걷는 평양의 밤거리는 묵직한 의미로 다가온다.

평양/글·사진 진천규 <통일TV>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