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3시34분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연락사무소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우리 쪽 연락관이 북쪽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는 북쪽이 오후 3시30분에 전화를 걸어왔으며
3일 오후 3시34분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연락사무소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우리 쪽 연락관이 북쪽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는 북쪽이 오후 3시30분에 전화를 걸어왔으며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남과 북의 발걸음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 판문점 연락채널 복원은 그 첫 성과다. 더욱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자신의 신년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후속방안 마련 지시’를 높이 평가하고, 회담 실무대책을 시급히 세우라는 지시로 화답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지난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 북한의 행보는 남쪽의 반응과 철저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3일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청와대의 환영 논평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의사 표현 및 실무대책 마련 지시 등을 언급한 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통일부 격인 조평통의 리 위원장이 입장문 발표에 나선 것도 전날 남북 고위급 회담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제의한 것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리 위원장은 이날 발표를 ‘최고 령도자(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위임’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이를 위한 당국회담, 남북관계 전면 복원 등을 신년사에서 언급한 김 위원장이 후속 회담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리 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지시라면서 △당 중앙위 통일전선부(통전부) △정부 조평통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등이 회담을 위한 실무준비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이어 북한은 회담 실무준비를 위해 이날 오후 3시30분(평양시각 3시) 판문점 연락채널을 열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이후 1년11개월 만에 남북 연락관 접촉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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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우리가 제안한 고위급 회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남북 실무접촉을 통해 그 형식과 의제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우리가 제의한 ‘고위급 회담’의 날짜와 형식·의제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리 위원장이 움직인 것을 보면 조 장관과 리 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장관급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북이 △조평통 △통전부 △체육지도위를 언급했기 때문에, 우리 쪽도 △통일부 △국가정보원 △문화체육관광부가 회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급 회담은 ‘남북관계의 신경망’으로 불렸다. 장관급 회담을 통해 의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각급 후속 회담이 열리는 식이다. 리 위원장과 조 장관이 회담에 나선다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체육회담과 함께 정부가 지난 7월 제의한 군사분계선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적십자 회담 등이 후속 회담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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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와 팩스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는지 확인했다고 전했다. 통일부 제공
전화와 팩스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는지 확인했다고 전했다. 통일부 제공

반면 북한이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대응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리 위원장이 입장문에서 김 위원장의 말을 따 “평창 올림픽경기대회 우리 쪽 대표단 파견과 그를 위한 북남 당국 간 회담이 현 상황에서의 북남관계 개선에서 의미있고 좋은 첫걸음으로 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적 문제를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회담 수석대표의 ‘격’은 차관급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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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회담 의제가 한꺼번에 확대되면, 양쪽의 갈등이 드러나면서 모멘텀을 끌고 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남북관계가 끊긴 상황인데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본격적인 당국회담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회담 초기엔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등 실무적인 문제에 집중하면서, 올림픽 기간에 북쪽에서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해 대화의 지평을 넓혀가는 방식도 거론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회담 초기부터 포괄적 합의를 서두르다 보면, 여러 쟁점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서두르지 않고 단계를 밟아가며 남북관계 복원의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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