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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은 조영길 국방장관에게 물었다. ‘용산기지 완전 이전하면 우리 안보에 문제 있습니까?’ ‘문제없습니다. 다만 국민들이 안보 불안을 느낄 것입니다.’ ‘됐습니다. 그럼 미국이 원하면 완전 이전하는 것으로 합시다.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잘 설득해주시구요.’”

최근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참모 시절을 회고하며 낸 책 <칼날 위의 평화>의 한 대목이다. 당시 한미연합사의 평택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애초 한-미는 한미연합사의 용산기지 잔류에 합의하고 17만평을 제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미군이 돌연 태도를 바꿔 기지 경비용으로 28만평이 필요하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용산기지를 완전 철수하겠다고 압박해 오자, 노 대통령이 조 장관에게 군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이후 정부는 “20만평 이상은 어렵다”는 방침에 따라 미국과 협상을 했고, 결국 한-미는 2004년 1월 연합사를 포함한 용산기지의 완전 이전에 최종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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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렵게 맺어진 이 합의는 지난달 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재연기 합의를 계기로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한 미2사단 예하 210화력여단도 기존 합의가 번복돼 동두천에 잔류하는 것으로 됐다. 애초 전작권과 무관하게 ‘안보에 아무 문제 없이’ 추진된 사안이지만, 전작권 전환 재연기와 연계되면서 10년 뒤 별다른 설명도 없이 ‘안보에 문제가 되는’ 사안이 된 것이다. 용산지역이 근대 이후 100여년 만에 외국군의 주둔에서 벗어난다는 상징성이나 210화력여단의 이전을 기다려왔던 동두천 주민들의 바람도 한순간에 날아갔다.

“한국이 전작권·부대잔류 요구” 미국, 한국이 원인제공 못박아킬체인·KAMD 구축에 17조 미국 무기구매 압력도 커질 듯

이들 부대의 잔류로 파생되는 비용도 한국 정부가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그동안 한-미 간에는 ‘원인제공자 비용부담’ 원칙이 관례처럼 적용돼 왔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요청한 만큼 이들 부대의 잔류 비용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월터 샤프 전 연합사령관이 지난해 말 한 보고서에서 ‘평택에 (연합사를 대체할) 한국사령부(KORCOM) 용도의 건물과 시설이 잘 지어지고 있다. 전작권 전환이 지연되면 비용이 발생할 것이고, 미국은 한국에 이 비용의 지불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며 “전작권 전환이 2020년대 중반 이뤄진다면 한국사령부 건설이 10년가량 지연된다. 그러면 막대한 지연 비용을 한국이 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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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김기수 국방부 미군기지 이전 사업단장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210화력여단의 이전이 지연되는 동안 이자 비용은 우리가 부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210화력여단이 이전할 경우 3800억원으로 평가되는 부대 터 매각 수익으로 이전비용을 충당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오히려 연 84억원(국고채 금리 2.2% 적용시)의 이자를 떠안게 된 것이다.

‘사드’ 한반도 배치 다시 거론 가능성

미군 매체 <성조>가 지난달 26일 연합사와 210화력여단의 잔류에 대해 “한국 정부가 요구한 것”이라고 보도한 것도 시사적이다. 전작권 전환 지연으로 평택기지 완공이 지연되는 데 따른 비용이나 용산과 동두천 기지 재개발이 늦어지거나 무산되는 데 따른 비용 등은 원인제공자인 한국의 부담이라는 점을 짚어둔 것이다. 국방부는 논란을 빚자 2일 자료를 내어 “이들 부대의 잔류는 한·미 국방당국 공동의 논의로 결정된 것”이라며 “한·미는 향후 합리적 판단 절차에 따라 소요비용을 산출하고 배분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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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대 잔류비용 문제 외에도 한국이 다른 분야에서 전작권 전환 재연기의 대가를 치를 가능성도 많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전작권 환수를 1차 연기할 때는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양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는 최근 미국에서 괌 기지 정비 예산 일부를 한국이 부담하는 방안이 논의된 점이 눈길을 끈다. 미 의회조사국은 최근 ‘괌: 미국 군사력배치’ 보고서에서 지난해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B-52를 출격시켰던 사실 등을 들어 “미 당국자들이 괌의 군사력 증강을 북한의 위협과 연계하고 있다”며 “한국이 괌의 군사력 증강에 필요한 비용에 기여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번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는 논의되지 않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합류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한-중 관계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한국군의 군사력 증강 압력도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 미국에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요청한 이후 막대한 비용이 드는 미국 첨단무기 구매를 잇따라 결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차기전투기의 요구 성능으로 스텔스 기능을 추가해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를 낙점하고 올해 3월 40대(7조300억원)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올 3월 오랫동안 끌어온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9000억원)를 구입하기로 했고, 4월에는 패트리엇(PAC)-3 미사일(1조3000억원) 도입을 결정했다. 앞으로도 정부는 북핵·미사일 위협 대응 명목으로 ‘킬체인’(선제타격 체계)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구축에 2023년까지 17조4000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에 미사일방어 투자 확대를 요구해온 미국의 군사력 증강 요구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라며 “이는 한국군이 전작권 전환에 대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군비감축 압력에 직면한 미군이 중국 견제 등 동북아 전략 차원에서 요구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