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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공동성명 이래 남북한 접촉 및 회담이 모두 606회 열렸으나 이번 같은 경우는 없었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의 지적처럼 12일 남북 당국회담의 무산은 남북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줬다. 표면적으론 수석대표를 둘러싼 이견이 원인이었으나,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비타협적인 태도가 회담 자체를 무산시킨 ‘주범’이라고 봐야 한다.

남북은 11일 오후 1시쯤 연락관들의 대면 접촉을 통해 5명의 대표단 명단을 교환했다. 그러나 이를 받아본 북한이 즉각 남한 대표단의 명단을 문제 삼았다. 수석대표가 김남식 통일부 차관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9일 실무접촉에서 대표단장을 ‘상급(장관급) 당국자’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남한이 보내겠다는 수석대표가 ‘차관’이므로 장관급이라고 주장하는 자신들의 수석대표와 ‘급’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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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장관급 대표라고 주장한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문제를 제기했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조평통 서기국 국장의 권한과 책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는 볼 수 없다. 조평통은 부위원장이 여럿이고 그 아래에 서기국 국장이 있다”고 했다. 또 정부는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수석대표로 내세운 북한이 한국의 통일부 차관이 격에 맞지 않는다고 회담 보류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수석대표의 급을 두고 다투다 결국 회담 자체를 무산시킨 이번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남북한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양쪽 정부가 9일 실무접촉에서 수석대표의 급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그 뒤에도 이를 계속 문제 삼은 태도를 지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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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정부가 이제까지의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수석대표로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해 나오라고 한 것은, 외교 관례로 보면 부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북한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청와대가 10일 이를 재차 문제 삼은 것은 지나친 압박으로 보인다. 통일부의 한 전직 고위 관리는 “남북 회담의 경험이 많은 통일부가 김양건 통전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올 것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일부가 청와대의 ‘깨알 지시’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경우도 문제다. 스스로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한국의 통일부 장관보다 약간 급이 높다고 판단한다 해도, 수석대표로 나오지 못할 이유로 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이 통전부장을 수석대표로 거듭 요구했음에도, 김 부장 바로 아래 부부장도 아닌, 당 외곽단체 조평통의 일개 국장을 수석대표로 내세운 것은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것이었다. 더욱이 북한 스스로 통전부장의 참석을 거부했으면서 남한 쪽 수석대표가 통일부 차관이라는 이유로 회담을 무산시킨 점은 자가당착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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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오랜만에 대화를 재개하는 마당이므로 남북한이 서로 불만스런 점이 있더라도 아량을 갖고 상대방을 설득했어야 했다. 남북이 과거의 대화 관례를 무시하고 아마추어로 다시 시작할 것이 아니라, 과거 남북 대화의 경험을 살려 성숙한 대화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강태호 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