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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미, 60년대 전쟁 나면 전술핵으로 한강 다리 폭파 계획”

등록 :2022-08-06 00:00수정 :2022-08-08 17:20

1968~69년 주한미군 핵파괴탄 운용부대원 첫 증언
“북한군 한강 이남 진출 지연시키려는 목적으로 계획
실제 핵파괴탄 터트렸다면 히로시마와 맞먹는 사상자”
히로시마 핵투하 ‘에놀라 게이’ 미공개 사진도 공개
마이클 로치가 1968~1969년 의정부시 외곽에 있던 주한미군의 스탠리 캠프를 근거지로 한 핵파괴탄(ADM) 운용 소대에 근무할 때 소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이 로치다.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마이클 로치가 1968~1969년 의정부시 외곽에 있던 주한미군의 스탠리 캠프를 근거지로 한 핵파괴탄(ADM) 운용 소대에 근무할 때 소대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이 로치다.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미국은 1960년대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북한군의 남하를 막으려고 모든 한강 다리를 전술핵무기로 파괴할 작전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68~1969년 주한미군 전술핵 운용 부대에서 근무한 마이클 로치는 6일 미국 노틸러스연구소(소장 피터 헤이즈)의 누리집에 실린 “한 가족의 핵전쟁의 갈림길”이라는 자전적 글에서 이런 증언을 했다. 한국의 아시아태평양리더십네트워크(APLN)와 일본 나가사키대학교 핵무기폐기연구센터(RECNA)이 함께 공개한 로치의 이 자전적 글은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1945년 8월6일) 77주기에 맞춰 공개됐다.

냉전기 미국이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사실은 이미 여러 증언과 문서로 사실로 확인됐지만,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운용 부대에 근무한 당사자의 공개 증언은 처음이다. 미국은 1958년 1월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들여왔고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전술핵무기 철수 비밀명령(1991년 9월27일)으로 모두 회수하기 전까지 주한미군 부대에서 전술핵무기를 보유·운용했다.

1968년 마이클 로치가 ’핵파괴탄’(ADM) 운용 훈련을 받은 의정부시 외곽 스탠리 캠프의 이른바 ‘원숭이 집’(Monkey House).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1968년 마이클 로치가 ’핵파괴탄’(ADM) 운용 훈련을 받은 의정부시 외곽 스탠리 캠프의 이른바 ‘원숭이 집’(Monkey House).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1968년 마이클 로치의 ‘핵파괴탄’(ADM) 운용 소대의 주둔지인 의정부시 외곽 스탠리 캠프.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1968년 마이클 로치의 ‘핵파괴탄’(ADM) 운용 소대의 주둔지인 의정부시 외곽 스탠리 캠프.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로치는 1968~1969년 의정부시 외곽에 있던 주한미군의 스탠리 캠프를 근거지로 한 핵파괴탄(ADM) 운용 소대에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핵파괴탄은 흔히 ‘핵배낭’ 또는 ‘핵지뢰’로 불리며, 폭발력은 최소 10KT으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녔다. 로치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1968~69년은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작원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기도, 미국 정보함 푸에블루호 나포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작원 남파 등으로 한반도가 한국전쟁 이후 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때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는 당시 주한미군은 일급비밀인 ‘아메리칸 플랜’에 따라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전술핵폭탄으로 한강 다리를 폭파해 북한군의 한강 이남 진출을 늦추려 했는데, 자신이 속한 부대의 임무가 핵파괴탄으로 한강 다리와 공항 활주로 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우리의 자체 계산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실제로 핵파괴탄을 터트렸다면 히로시마의 사상자와 맞먹는 7만~8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파괴탄(ADM)을 운반하는 데 쓰이는 훈련용 핵배낭. 위키피디아
핵파괴탄(ADM)을 운반하는 데 쓰이는 훈련용 핵배낭. 위키피디아

핵파괴탄(ADM)의 내부 구성물. 위키피디아
핵파괴탄(ADM)의 내부 구성물. 위키피디아
마이클 로치가 처음으로 공개한,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미군 폭격기 B-29 ‘에놀라 게이’를 지원하는 지상 레이더 운용 부대에서 근무한 아버지가 생전에 보관해온 미공개 사진. 이 사진에는 ‘에놀라 게이’의 조종석 오른쪽 외벽에 “첫 핵폭탄-히로시마-1945년 8월6일”이라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마이클 로치가 처음으로 공개한,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미군 폭격기 B-29 ‘에놀라 게이’를 지원하는 지상 레이더 운용 부대에서 근무한 아버지가 생전에 보관해온 미공개 사진. 이 사진에는 ‘에놀라 게이’의 조종석 오른쪽 외벽에 “첫 핵폭탄-히로시마-1945년 8월6일”이라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마이클 로치

로치는 “1960년대 (주한)미군은 전술핵무기를 활용한 방어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핵심 목적은 북한·중국·소련군 기갑부대의 남하를 2주 정도 늦추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핵파괴탄 운용 소대는 “(미국) 대통령부터 태평양사령관, 1군단장, 제36공병단, 제11공병대대, 우리 ‘B’중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ADM 소대로 이어지는 긴 지휘 계통의 마지막 연결고리였다”고 밝혔다.

미국 위스콘신의 제인스빌에서 5대째 살고 있는 로치는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미군 폭격기 B-29 ‘에놀라 게이’를 지원하는 지상 레이더 운용 부대에서 근무한 아버지가 생전에 보관해온 미공개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에놀라 게이’의 조종석 오른쪽 외벽에 “첫 핵폭탄-히로시마-1945년 8월6일”이라 적혀 있다.

로치는 자신의 아버지는 생전에 전쟁을 끝낸 히로시마 핵폭탄 투여에 “작은 기여를 한 공로를 매우 자랑스러워 했”지만, 자신은 “(주한미군의) 핵파괴탄 운용 부대에서 일한 사실로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로치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역사 지식과 명분으로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서울)에 핵폭탄을 터뜨리는 일과 같은 중차대한 결정에 너무도 가까이 다가갔다는 사실에 나는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그런 우려는 나를 지금껏 역사를 공부하고 좀더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애쓰게 했다”고 적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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