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대기업 30개사와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 4곳이 참석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대기업 30개사와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 4곳이 참석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기업 대표들과 만나 일본의 수출 규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일 갈등의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부와 재계의 유기적 협조를 당부했다. 기업인들은 이 자리에서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 확대와 전폭적인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10일 청와대에서 2시간 넘게 진행된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을 “전례 없는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처가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정부와 기업이 유기적인 비상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번 사태를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고 했다.

이런 문 대통령의 언급은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의 이유를 바꿔가며 우리 정부의 협상 제의를 거부하는 배경에 일본의 국내 정치적 요인뿐 아니라, 격차를 좁혀오는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계심도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강제징용, 대북제재, 사린가스 등으로 근거를 바꾸면서 사실상 협상으로 풀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꾸 말바꾸기를 하면서 협상의 문을 닫아거는 모습은 문제를 풀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고위 관계자도 “일본이 우리와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누려왔는데, 이제 우리가 반도체 기술 등에서 앞지르고 추격해오니 자칫하다간 두 나라의 경제적 처지가 역전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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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일본의 “경제적 의도”를 여러차례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한-일 관계는 윈윈해야 하는데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만일 일본에 경제적 의도가 있다면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정부가 지지층 결집이라는 단순하고 단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갈등을 키우는 게 아니라면, 이번과 같은 갈등은 한-일 관계의 ‘상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간담회 내내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수입처 다변화 △주요 소재·부품 국산화 △정부 지원 강화와 인허가 등 행정절차 최소화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청와대 쪽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대기업에 협력을 당부한다”며 “중소기업과의 부품·소재 공동개발, 구입, 국산화에 협력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품목으로 정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외에 추가로 규제 대상에 올릴 수 있는 핵심 소재·부품 목록을 작성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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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은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공감을 표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고민정 대변인은 “기업인들은 부품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부품 국산화에 대한 정부 의지에 공감을 나타내고, 장기적 안목과 긴 호흡의 지원을 당부했다. 납품업체와 협력 강화를 통해 해당 산업의 뿌리를 내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기업인들이 이날 강조한 것은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지원과 규제 해제였다. 기술 개발에는 시간이 걸리고 실패 가능성도 큰 만큼 정부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한 사례를 소개하며 자신감을 드러낸 참석자도 있었다고 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기업들이 ‘이번 사태 탓에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을 했다면 매우 힘들었을 텐데, 다수가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하면 시간이 좀 걸릴 뿐 극복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일부 기업인은 자체 기술 개발에 소홀했다는 점을 반성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청와대는 경제 마찰과 관련한 대일 특사 파견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특사는 외교관계가 단절돼 있을 때나 보내는 것”이라며 특사 검토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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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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