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5일 새벽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여당의 ‘일방적 의사진행’에 항의하며 퇴장하자 법안 일부를 수정해 통과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언론·시민단체가 독소조항으로 지적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가운데 일부를 삭제했지만, 입증 요건을 강화하는 대목을 오히려 들어내는 등 문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 오후 3시20분께 개회한 법사위는 언론중재법 등 쟁점 법안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으며 자정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법사위원장 직무대리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야당 동의 없이 차수를 변경하자 국민의힘이 강력히 항의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윤한홍 의원은 “안건이 많으면 날을 따로 잡아서 논의해야지, 일방적으로 의사진행을 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반발했다. 결국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차수 변경에 동의할 수 없다’며 새벽 1시께 퇴장했다. 국민의힘 퇴장 이후 민주당은 ‘수술실 폐회로(CCTV) 설치 의무화법’(의료법 개정안)과 탄소중립법 제정안 등을 단독처리했다. 언론중재법은 법사위 마지막 안건으로 새벽 3시50분께 처리됐다. 법사위 개회 12시간30여분 만이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에 대한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가운데 2호인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를 삭제했다. 또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에서 “피해를 가중시키는”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결과’를 근거로 언론 보도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인 김성순 변호사는 “고의·중과실은 과정의 문제인데 그것을 결과로 추정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부분이 빠진 것은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의·중과실의 추정 조항이 4개에서 3개로 줄어들었을 뿐 △보복·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 △정정·추후보도가 있었음에도 검증 없이 복제·인용하는 보도 △기사와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내용을 왜곡한 경우라는 추정 조항은 그대로 남았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 일부가 삭제된 건 다행이지만, 고의·중과실을 추정한다는 핵심적 문제 조항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성순 변호사도 “추정 조항 자체를 없애고 일반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대로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법사위는 “법원은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명백한”이라는 수식어를 삭제했다. 앞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지난 17일 법안을 수정하면서 고의·중과실 입증 요건을 강화하겠다며 ‘명백한’이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이를 다시 들어낸 것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고의·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 조항이 살아 있는 한 ‘명백한’의 삭제 여부는 큰 의미가 없지만, 그나마 구성 요건을 높여둔 걸 다시 낮췄다”고 비판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이라는 독소조항을 해소하는 데 큰 의미가 없었던 문구를 상임위에서 ‘생색내기’로 집어넣고 결국 법사위에서 제자리로 돌린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송채경화 김효실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