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건 자체조사 과정에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특정 재판에 관여했다는 관련자 진술이 있었으나 묵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겨레>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소송과 관련해 “박 처장과 임종헌 차장이 ‘의원직 판단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고 판결문에서 밝힐 필요가 있다고 해 이를 심아무개 심의관을 통해 재판부에 전달했다”고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대법원 특별조사단에 진술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특조단은 박 전 처장이 조사를 거부하자 입장을 밝힌 글만 받고 사법농단의 최종 책임자는 임 전 차장이라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사실이라면 특조단의 심각한 직무유기일 뿐 아니라 의도적인 ‘꼬리자르기’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통진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렸다. 중앙선관위가 한발 나아가 비례대표 지방의원들까지 의원직을 박탈하자 통진당 지방의원은 전주지법에 퇴직처분 취소소송을 내 계류 중인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9월15일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 예상 및 파장 분석’이란 문건을 작성했는데 특조단은 이에 대한 조사 결과 이 상임위원이 ‘사법부에 판단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전주지법 재판부 부장판사와 연수원 동기인 심의관을 통해 접촉을 지시했다고 결론지었다.
<한겨레> 보도에 대해 특조단 쪽은 “이 상임위원이 ‘박병대 처장 및 임종헌 차장의 뜻’ 운운하며 심의관에게 말했다고 진술한 바 없다”면서도 “박 처장이나 임 차장 등 행정처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정도의 진술만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박 처장은 이 상임위원에게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을 챙겨보라며 사실상 법관 사찰을 지시하는 등 사법농단의 주역을 맡았다는 의혹을 사는 인물이다. 통진당 재판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진술이 나왔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조차 않았다. 그런 특조단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법원행정처가 검찰의 핵심자료 요청을 거부하고 영장전담 판사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무더기 기각하고 있는 것도 암묵적인 담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법원이 임 전 차장 선에서 꼬리자르기 하는 것으로 사법농단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