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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무역 전쟁’ 방아쇠 당긴 트럼프의 ‘철강 관세’ 무리수

등록 :2018-03-02 18:34수정 :2018-03-02 22:3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미 철강업계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수입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주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할 예정이다. 미 상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3가지 옵션 중 한국 등 12개 국가에만 53%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채택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다만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감안하면 서명 단계에서 또다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의 근거로 냉전시대인 1962년 제정돼 지금은 사문화한 ‘무역 확장법’을 동원했다.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이 탱크와 비행기 제작에 사용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외국 업체들이 우리 공장과 일자리를 파괴했다”고 말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미 철강산업의 퇴조는 자체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 크다.

이런 까닭에 미국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대부분 관세 부과에 반대했고, 공화당 지도부는 최근 몇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수차례 회의를 하며 ‘신중한 결정’을 조언했다고 한다. 미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소수의 몇개 기업에는 잠시 유익할 수 있겠지만 더 많은 기업을 해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가 임기 중 최대 정책 실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철강·알루미늄을 원료로 하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철강·알루미늄 산업에서 나타날 고용 증가 효과가 다른 산업의 고용 감소로 상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관세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은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 의원 3분의 1을 선출하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빼앗기면 그렇잖아도 ‘러시아 스캔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최악의 경우 탄핵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수입 규제를 통한 일자리 확대를 성과로 내세워 자신의 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의 백인 노동자 지지를 최대한 끌어내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다. 국내 정치를 위해 국제무역 규범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보복 관세는 ‘무역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지켜야 할 국익은 미국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주요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처”라며 정면 대응을 선언했다. 중국은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무시하고 중국 기업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미국의 잘못된 방식에 대해 필요한 조처로 합법적인 권리를 수호하겠다”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은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면서 그에 비례하는 대응을 하겠다”며 보복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적 보호무역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우리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국제무역 규범에 근거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통상 문제는 오직 국익이라는 잣대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세계무역기구 제소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미국이 받아들지 않으면 사실상 강제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만만하게 보여 계속 당한다. 추가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국제기구를 통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의 무역 보복으로 피해를 보는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공조해 공동 대응에도 나서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수출 시장 다변화 등 수출 산업의 체질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미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여야 우리 경제가 무리한 통상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다.

▶ 관련 기사 : 트럼프 ‘무역 전쟁’ 포문에 동맹국들 일제히 반발

▶ 관련 기사 : 트럼프 “수입산 철강에 25% 관세”…한국 ‘최악’ 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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