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새해 기자회견을 통해 ‘개헌 구상’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올 6월에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르되, 국회가 합의에 실패하면 정부가 개헌안을 내겠다며 ‘독자적 개헌 발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회는 이전과 다른 차원에서 개헌 논의를 진행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개헌은 국회가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추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미 개헌특위 1년을 허송세월했고, 또다시 꾸린 특위의 앞날도 매우 불투명하다. 자유한국당은 개헌을 지방선거 이후에 하자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개헌을 안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홍준표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약속한 ‘6월 개헌’ 공약을 왜 포기하는 건지 설명도 없다.
헌법은 엄연히 대통령에게도 개헌 발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비록 최선은 아닐지라도 국회가 끝내 개헌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한다면, 정부가 나서 국민 의견을 수렴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도 개헌 저지 의석(100석)을 지닌 자유한국당이 한사코 반대하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독자적 개헌안을 제출해도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히겠다고 했다. 정부형태를 제외한 기본권 확대, 지방자치 강화 등에 개헌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얘기다. 이에 관해선 헌법·정치학자들도 의견이 갈린다. 이왕에 개헌을 할 바에야 정부형태까지 포함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합의가 어렵다면 일단 다른 부분이라도 먼저 개헌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가능하다면 당연히 정부형태까지 포함하는 개헌이 맞는다.
30년 만에 맞은 절호의 개헌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정부형태를 뺀 다른 부분의 개헌을 두고선 대체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약간의 이견은 국회에서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이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제한적으로라도 개헌을 추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독자적 개헌 발의는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는 이상, 대통령 발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크게 증폭될 게 분명하다. 헌법은 국민 삶을 폭넓게 규정하는 고도의 규범이다. 그런 헌법을 고치는 과정이 국민 갈등을 부추긴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제 국회가 개헌에 관한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개헌 시기에 대해서 융통성을 보이면 국민적 공감대 속에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 작은 정치적 이해에 집착해 국가 중대사를 그르치는 건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회가 2월 말까지 합의안을 만들면 된다. 개헌안 발의가 대통령에게 넘어간다면 국회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