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함께 ‘예산 국회’가 본격 시작됐다. 새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국회는 다음달 2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끝내야 한다. 예산이야 해마다 짜는 것이지만, 내년 예산안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해 처음으로 내놓은 새해 예산안으로서 내용 면에서 기존 예산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향후 재정운용 방향에 큰 폭의 변화를 준 예산안이다. 국회가 제대로 심의하고, 그 과정에서 나라의 앞날을 위해 어떤 조세·재정정책이 필요한지 활발한 논의와 의견 수렴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7.1%(28조4천억원) 많은 429조원으로 편성했다. 경상 성장률을 크게 뛰어넘는 증가율로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린 것이다. 그래서 ‘슈퍼 예산’이라는 말도 나왔다.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을 20%나 줄인 대신, 교육 예산과 보건·복지·노동 예산을 두 자릿수 증가율로 늘린 게 특징이다.
한번 제도를 도입하거나 증액을 하면 물리기는 어려운 예산이 적지 않다. 5살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내년 7월부터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주는 예산이 잡혀 있고, 노인 기초연금은 월 20만6천원에서 25만원으로 올리는 계획이 예산에 반영돼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밖에 국민생활·안전 분야 중앙직 공무원을 1만5천명 충원하는 계획도 들어 있다. 하나하나 모두 중요한 것이다. 과표 기준 3억원 초과 소득에 대해 세율을 올리는 소득세법 개정안, 과표 기준 2000억원 초과 수익에 대해 세율을 올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은 여야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장기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깊이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나라 예산은 행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국회가 증액을 하려면 정부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12월1일 자정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정부 원안이 상정된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여소야대 국회다. 야당으로서는 ‘사람중심 경제’로 가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평가하고, 야당의 정책 대안을 국민에게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예산 국회를 놀리고 다른 일로 갈등을 빚다가 막판에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로 어물쩍 타협하고 넘어가던 구태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한겨레 사설]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 아닌, 제대로 된 ‘예산 심의’를
- 수정 2017-11-01 18:04
- 등록 2017-11-01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