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이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룹별로 돈을 할당한 데 더해, 약점이 있는 기업들에선 따로 거액을 받으려 했다. ‘뇌물’이라고 볼 만하다.
재단과 일부 기업 사이에선 노골적인 ‘거래’가 있었다. <한겨레>가 입수한 케이스포츠재단 회의록을 보면, 올해 2월26일 재단 관계자들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서울 ㄹ호텔에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을 만나 ‘재단에 대한 70억~80억원의 재정 지원’을 부탁한다. 이 회장은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다만,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는데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돈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자금지원은 결국 무산됐지만, 돈을 전제로 대가를 조율한 것만으로도 ‘제3자 뇌물제공죄’가 될 수 있다. 공무원인 경제수석이 직무 범위인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인 재단 혹은 최순실씨 등에게 돈을 주도록 약속을 받았으니, 혐의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케이스포츠재단 설립 당시 17억원을 낸 롯데그룹은 검찰 내사를 받던 지난 5월 체육인재 육성사업 지원 명목으로 70억원을 따로 더 냈다. 돈을 내기까지 최씨와 안 수석의 독려와 점검도 여러 차례였다고 한다. 롯데가 낸 돈은 검찰의 롯데 압수수색 얼마 전인 5월 말 반환됐다. 검찰 수사 무마에 대한 기대나 명시적·묵시적 약속이 있어 거액을 냈다가 성사되기 어렵자 돌려받은 것으로 추정할 만하다. 실제 그랬다면 돈이 건네진 순간에 이미 범죄가 된다.
그런 일은 더 있을 법하다. 총수 사면이 다급했던 씨제이, 사주 일가의 가석방 문제가 걸려 있던 에스케이 등 두 재단에 출연금을 냈거나 별도의 지원 요구를 받은 여러 기업이 저마다 이런저런 ‘현안’이 있었을 터이다. 그 해결을 기대해 돈을 냈다면 기업도 마냥 피해자일 수만은 없다. 엄정한 조사를 통해 ‘대가성’을 밝혀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듯하다. 검찰이 본격 조사도 않고 지레 뇌물죄 적용을 포기한다면 직무유기가 된다. 재단 일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등 누군가를 봐주려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렇게 좌고우면할 때가 결코 아니다.
[한겨레 사설] ‘대가 노린 기업 돈’엔 뇌물죄 적용이 당연하다
- 수정 2016-11-03 17:39
- 등록 2016-11-03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