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모처럼 해빙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남과 북은 엊그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폐막한 아세안지역포럼(ARF) 외교장관회의 기간에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과 외교장관 비공식 회동을 잇따라 했다. 양쪽의 태도도 눈에 띄게 유연해졌다. 비록 구체적인 협상 일정 등에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남북이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북-미 회담 추진 물살이 빨라지고 있는 점이다. 핵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조만간 뉴욕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활동공간이 북-미 회담 쪽으로 급격히 옮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를 병행하는 쪽으로 대응기조를 정했다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북-미 대화로 직행하고 싶어하는 것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고,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르자는 내부 의견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국면에 진입하는 9월 이전에 북한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토대를 마련하길 원하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남북대화와 북-미 회담 병행의 최대 걸림돌은 남쪽 정부 자체가 될 수 있다.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로서는 모처럼 찾아온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살려 한반도 긴장완화에 주도적으로 나설 것인가, 아니면 북-미 회담 등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는 구경꾼의 처지로 전락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 셈이다. 해답 역시 자명하다. 파탄난 남북관계를 회복하고 살얼음처럼 위태로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쳐버릴 수 없다.
공교롭게도 남북간 대화 복원 흐름에 때맞춰 8·15 광복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광복절 축사에서 ‘의미있는 대북 메시지’를 한번도 내놓지 않았다. 이번 광복절까지 그렇게 헛되이 보내서는 곤란하다. 압박에서 대화로 전환하는 결단으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대북정책과 메시지를 선보이길 바란다.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현 진용의 비전과 전략 부재, 무능은 이미 거듭 확인됐다. 이 대통령의 깊은 성찰과 단호한 결단을 기대한다.
[사설] 이 대통령의 ‘남북관계 복원’ 마지막 기회
- 수정 2011-07-24 19:05
- 등록 2011-07-24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