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번주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한다. 기시다 총리에겐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자신의 ‘외교 치적’을 과시하는 뜻깊은 일정일 수 있겠지만, ‘물컵의 채워지지 않은 남은 반’에 좌절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심사는 복잡하기만 하다. 게다가 사도광산 ‘외교 참사’, 부적격 인사의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윤석열 정부의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일본을 보는 한국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답답한 상태다. 진정한 한-일 우호를 위한 ‘최소한의 성의 표시’도 없이 빈손으로 사진만 찍고 간다면, 이런 한국민들의 상처를 더욱 쓰리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대통령실과 일본 총리관저는 3일 기시다 총리가 6~7일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일정대로 회담이 이뤄진다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12번째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 두 정상은 지난 2년 반 동안 말 그대로 ‘영혼의 동반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건 윤 대통령이 먼저였다. 지난해 3월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정신에 반하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놓자, 기시다 총리가 적극 호응하며 양국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됐다. 그 힘을 빌려 그해 8월 한·미·일 3개국이 사실상 3각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내놓게 된다. 이 모든 게 한국 국민들의 광범위한 동의와 상관없는 ‘일방적 독주’였다.
이런 무리한 정책을 쏟아내며 윤 대통령이 일방적 양보를 거듭하는데도 일본의 호응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나온 대책이라고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서울 강남 아파트 한채 값도 안 되는 2억엔을 배상과 관계없는 교류 사업에 출연하겠다고 한 게 전부다. 역사 인식에 대해서도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5월 무라야마 담화(1995) 때 나온 사죄·반성 등의 용어를 극구 피하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을 뿐이다. 한국의 불만이 쏟아질 때마다, 일본에선 자민당 내 ‘온건파’(고치파)인 기시다 총리가 우익 성향 다수파인 아베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해왔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뜻을 밝히며 ‘정치가의 고집’에 대해 언급했다. 한-일의 진정한 우호를 원한다면,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단 한번이라도 ‘온건파 기시다’의 진면목을 보여달라. 그런 각오도 없이 한국을 찾겠다는 것이라면, 이 방문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