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소득이 1년째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소득이 늘지 않아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소매판매가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회복하는 듯하던 경기도 성장 모멘텀이 약화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는 ‘재정건전성 신화’에만 매몰된 채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9일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지난 2분기에 0.8% 증가에 그쳤다. 올해 1분기에 1.6%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상반기에 소득은 뒷걸음질 쳤다. 실질소득은 최근 1년간 사실상 정체 흐름이다. 특히, 소득 상위 20% 가구의 명목 근로소득은 2분기에 8.3% 증가한 반면에 하위 20% 가구는 7.5% 감소해 소득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졌다. 또한 ‘7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우리 경제의 재화 판매 수준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지수는 지난달 100.6으로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7월 이후 가장 낮았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4%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에는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계와 기업이 빚에 짓눌려 있는 상황에서 경제 3주체 중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곳은 바로 정부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살리고 서민층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그런데 정부는 되레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초긴축 예산을 짜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형국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다른 한편에선 주로 소득·자산 상위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에 열중하고 있다. 말로는 재정건전성을 외치면서 재정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올해 7월까지 국세는 예년보다 덜 걷혀 올해도 수십조원대의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건전 재정 기조를 굳건히 지킨 결과, 국가 재정도 더욱 튼튼해졌다”고 자화자찬했다. 또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며 “저와 정부는 성장의 과실이 국민의 삶에 더 빨리 확산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고 있다”고도 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자기주장이 강한 윤 대통령이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으니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리가 없다.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한다. 9월부터 시작되는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가 확실한 견제 역할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