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최근 권익위 고위 간부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고인의 순직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거취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정 부위원장 사퇴로 마무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권익위의 기능이 어떻게 무력화됐는지 엄정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 부위원장은 지난 8일 숨진 김아무개 부패방지국장의 직속상관으로, 김 국장이 실무 총괄을 맡았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헬기 이송 특혜 의혹’,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 사건’ 등의 조사를 지휘한 책임자다. 권익위는 지난 6월 명품백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에 대해선 청탁금지법에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선 ‘대통령 직무와 관련성이 없어 신고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제대로 된 조사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정 부위원장은 이런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근거에 대해선 한마디도 밝히지 않은 채 72초 만에 브리핑을 마쳤다.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도 ‘종결’과 ‘수사기관 이첩 또는 송부’를 두고 의견이 맞섰으나, 정 부위원장이 종결 쪽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숨진 김 국장은 이 과정에서 ‘양심에 반하는 일’이라며 심한 자책감을 토로했다고 주변 인사들은 전하고 있다. 권익위의 편파 조사가 김 국장 죽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정 부위원장은 이를 질타하는 목소리에 ‘권익위는 원칙대로 했는데 정치권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며 적반하장식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올 초 임명된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 정 부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이자 대선 캠프에도 참여한 인사다. 명품백 사건이 접수된 지난해 11월 이후 임명된 이들의 ‘임무’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김 국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선, 정 부위원장 사퇴라는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총체적 진상 파악부터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실은 14일 전현희 민주당 의원의 “김건희 살인자” 발언에 대해 “결과적으로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민주당”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청문회 또는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작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