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지휘하던 검찰 지휘부를 일거에 교체한 검찰 인사의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대통령실이 개입한 정황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이들 사건을 자꾸 덮으려 한다면 국민적 의혹은 오히려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더 이상 ‘방탄’에 집착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른 진상 규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15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을 경찰에 이첩하기로 한 방침을 발표하기 전날인 지난해 7월30일 대통령실이 해병대의 ‘언론 브리핑 자료’를 전달받았다. 박정훈 수사단장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해병대 출신 김아무개 대령이 “안보실장님이 보고 싶어 한다”며 수사 보고서를 요구하자 거절했으나, 김계환 사령관이 ‘안보실이 거듭 요청하니 언론 브리핑 자료라도 보내줘라’라고 지시하자 이 문서를 보냈다. 군사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규정한 법에 따라 수사 자료의 보안을 지키다가 대통령실의 거듭된 요구에 응한 것인데, 이 자체로 대통령실의 행위가 적법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튿날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채 상병 사건 처리 방침이 보고된 뒤 갑자기 언론 브리핑이 취소되고 경찰 이첩 중단 지시가 내려졌다.
이후 박 단장이 경찰 이첩을 강행하고 국방부가 나서 이를 회수한 8월2일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사이에 통화가 이뤄진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이 통화 내용에 대해 유 법무관리관은 ‘군 사망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한 보고서 요구였다’고 공수처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기 두 사람의 통화가 20여차례나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 등 대통령실이 수사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증거가 갈수록 보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거부한다면 ‘죄지었으니 특검을 거부한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번 검찰 인사를 두고 여당에서조차 “국민 눈치 좀 봤으면 좋겠다”, “지혜롭지 못하다”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 의구심을 키워 오히려 특검 명분만 키웠다는 것이다. 채 상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검찰 인사에 이어 대통령의 권한을 자신과 가족의 ‘방탄’에 이용한다는 국민적 분노를 부채질할 뿐이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을 조속히 공포하고, 검찰의 김 여사 수사에 대한 방해도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