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 인사가 늦어져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 공백 사태가 빚어질 것같다. 사진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이달 말로 끝난다. 정상적이라면 진작 후임 총재 임명 절차가 시작됐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교롭게 임기 종료 시점과 대통령 선거가 맞물려 문재인 대통령이 후임자 지명을 선거 뒤로 미뤄왔다.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 간의 만남도 늦어져 31일까지 임명 절차를 마무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 공백 사태가 빚어질 것 같다.
지금 경제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아직 진행 중인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국제사회의 러시아 경제 제재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물가가 급등하고 환율이 불안정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은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연준이 올해 6차례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변수다. 가계부채 급증, 코로나 대유행 탓에 상환을 계속 유예해준 자영업자 대출 등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인 한은 총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공백 사태가 길어져선 안된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가 하루속히 만나 의견을 조율해 후임 총재를 지명하고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법적으로는 현직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고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선거 뒤로 지명을 미뤄온 것은 후임 대통령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18일 “윤석열 당선자와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윤석열 당선자 쪽 김은혜 대변인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속히 만나서 한은 총재 후임자 지명을 결론짓기 바란다.
한은 총재는 정치인에게 맡기는 자리가 아니다. 한은법이 규정한 대로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인물을 임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주열 총재는 박근혜 정부 때 4년 임기의 총재로 임명됐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연임했다. 미국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해 4년을 일한 뒤 바이든 대통령이 재지명했다. 차기 한은 총재 임명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보다는 누가 적임자냐에 협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