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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철 칼럼] 그 반성문이 어색했던 이유

등록 :2021-05-05 17:36수정 :2021-05-06 02:38

반성은 책임이 가장 큰 사람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와 당의 추락한 현실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말할 것 없이 당청의 대주주인 대통령과 당대표, 그리고 이른바 ‘조국-윤석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초선 의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등 초선 의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백기철 l 편집인 

우리나라에선 큰 선거 때면 가까운 지인이나 친척 사이에 의를 상하는 일이 종종 있다. 1987년 12월 대선은 그런 면에서 아주 전형적인 선거였다. 이른바 양김, 즉 디제이(DJ)와 와이에스(YS)가 단일화에 실패하고 노태우와 3자 대결을 벌이면서 양김을 놓고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쩍’ 갈라졌다.

불과 6개월 전 ‘6월 항쟁’ 때 함께 “직선제 쟁취”를 외쳤던 이들이 양김이 나서자 생각도 나뉘었다. 대학의 선후배, 직장의 지인, 군대 동료에 이르기까지 서먹하고 불편해지기 일쑤였다. 민주개혁 진영도 양김 사이에서 갈렸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깊은 골이 패었다.

디제이는 나중에 “나라도 양보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회고는 회고일 뿐 디제이가 양보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양김은 당시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함께 외쳤던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87년 대선 정도는 아니지만 2019년 조국 사태 역시 2016년 촛불 이후 민주개혁 진영에 분열의 씨앗이 됐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2020년 총선은 ‘코로나 총선’이었고 미래통합당에 대한 심판 선거였다. 정부 실정이나 조국 사태 등에 대한 심판은 유보됐다고 봐야 한다.

조국 사태 당시 검찰개혁을 외친 서초동의 촛불은 2016년 촛불과는 사뭇 달랐다. 젊은이들의 이탈이 두드러졌는데, 아마도 4·7 보궐선거에서 20대 이반의 전조였을 수 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사람들 마음속의 촛불은 크게 흔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런저런 ‘내로남불’이 더해가며 더 깊어졌다. 에스엔에스(SNS)상에선 촛불을 함께 들었던 이들의 이탈과 회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조국 전 장관은 지금 현실의 법정과 역사의 법정에 함께 서 있다. 자녀들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 등은 형사 법정에서 면책된다 해도 도덕적·역사적 책임에서까지 자유로울 순 없다.

조국 사태는 달리 말하면 윤석열 사태이기도 하다. 윤석열은 검찰 지상주의의 ‘끝판왕’을 드러냄으로써 검찰이 어떻게 치졸한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다.

조국과 윤석열 중 누가 옳은지, 누구 편에 서야 하는지를 묻는 것은 우문에 가깝다. 아마도 조국도 틀렸고, 윤석열도 틀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만이 정의롭다며 제 길을 갔지만 결국 각자의 한계를 드러냈을 뿐이다.

조국 사태 이후 촛불 세력 분열의 심각성은 4·7 보궐선거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너무 늦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기회가 남았을 수 있다. 87년 대선 당시 양김은 자신들을 둘러싼 상황 논리를 극복할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까?

보궐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5명이 조국 사태가 패배의 한 원인이었다는 반성문을 써서 논란이 됐지만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가장 책임이 적은 축에 드는 초선들이 맨 먼저 반성문을 쓴 것부터가 이상했다.

반성은 책임이 가장 큰 사람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와 당이 추락한 현실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말할 것 없이 당청의 대주주인 대통령과 당대표, 그리고 이른바 ‘조국-윤석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다.

조국 전 장관 임명을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 당헌·당규 개정 안건을 당원 투표에 부친 이낙연 전 대표, 윤석열과의 싸움에서 백전백패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그리고 사태의 장본인인 조국 전 장관 등이 실질적으로 책임이 있다. 선거 이후 문 대통령이 “국민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사과했을 뿐 이들 중 누구도 제대로 사과하는 걸 보지 못했다.

이번 보궐선거까지 여당이 이겼다면 이른바 ‘조국의 강’을 건너자는 주장은 불거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랬다면 내년 대선 때 분명히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당사자인 조국 전 장관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법정에서 무죄 입증을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형사 법정에서의 분투와 별개로 자신으로 인해 실망하고 분노했을 많은 촛불 세력, 젊은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건넬 수는 없을까. 역사는 용기 있는 사람의 편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민생의 길, 코로나 극복의 길, 한반도 평화의 길로 매진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그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선거를 책임졌던 이로서 좀 더 분명히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민주당 새 지도부 역시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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