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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등록 :2021-04-22 18:51수정 :2021-04-2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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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로고를 배경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화이자 로고를 배경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ㅣ이종규 논설위원

2013년에 개봉한 재난 영화 <월드워Z>에는 ‘좀비 백신’을 세계 각지에 낙하산으로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유엔 조사관 출신의 한 영웅(브래드 핏)이 목숨을 건 활약을 펼친 끝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개발한 백신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좀비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 유엔은 이 ‘세계대전’을 이끄는 조직으로 그려진다.

현실에서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재난 앞에서 초국적 협력이나 지구를 구할 ‘영웅’의 활약은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대신 ‘각자도생’이라는 심리적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덮는다. 지금 벌어지는 ‘코로나 백신 전쟁’이 딱 그렇다.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평소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던 글로벌 리더십이나 연대와 협력 같은 고상한 가치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 자리에 똬리를 튼 건 ‘백신 민족주의’, ‘백신 이기주의’ 같은 살풍경이다.

‘백신 불평등’은 필연적 귀결이다. 미국·영국 등 부유한 나라들은 전국민이 충분히 접종하고도 남을 백신을 확보해놓은 반면,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나라 가운데는 아직 접종을 시작하지도 못한 곳이 상당수다. ‘블룸버그 백신 트래커’ 자료를 보면, 22일 현재 전세계에서 약 9억회의 접종이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38.2%가 상위 27개(1인당 GDP 기준) 부자 나라의 접종분이다. 미국이 23.5%로 압도적 1위다. 이 27개국의 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10.6%에 불과하다. 부자 나라의 ‘백신 싹쓸이’에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양상이다.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등 백신 강국들은 2차 접종을 마친 자국민들에게 ‘부스터 샷’(면역 효과 증진을 위한 추가 접종)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명당 3차례씩 접종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나라에 돌아갈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앞으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탓에 백신 효과가 떨어질 경우 또 추가 접종이 필요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2~2023년 접종 물량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나라들의 집단면역은 기약 없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가난한 나라의 노약자 등 고위험군은 큰 희생이 불가피하다.

이런 모습은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 때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당시에도 고소득 국가들이 초국적 제약회사와 선구매 계약을 통해 백신 사재기에 나섰다. 백신 부족 사태가 빚어지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의 저개발 국가들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전체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이들 나라에서 나왔다. 기후변화로 신종 감염병 출현이 잦아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데, 과거의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같은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조’ 움직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초기 세계보건기구 주도로 ‘코백스 퍼실리티’(세계 백신공동구매 연합체)가 꾸려졌다. 모든 나라에 공평하게 백신을 공급해 위험군부터 먼저 접종하자는 취지였다. 나무랄 데 없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백신 개발이 임박해지자 고소득 국가들의 ‘변심’이 시작됐다. 제약사와 개별 계약을 통해 입도선매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코백스에 돌아갈 물량이 줄어들면서 애초 구상은 차질을 빚고 있다. 보다 못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나서 ‘백신 빈부 격차는 도덕적 잔학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우리 먼저”라는 구호에 묻혀 잦아들었다.

각자도생이 팬데믹 종식을 늦출 것이라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백신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유행이 계속되고, 그 과정에서 백신 효과를 떨어뜨리는 변이 바이러스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변이 바이러스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면 재유행이 시작되고 ‘변이 백신’을 다시 개발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몇몇 나라들이 잠시 일상을 회복한다고 해서 코로나가 종식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지난 3월, 세계 20여개국 정상의 ‘팬데믹 조약’ 공동기고문)는 경고를 새길 때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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