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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김수영과 그의 적들

등록 :2021-04-08 17:01수정 :2021-04-0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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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수영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생전의 김수영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최재봉ㅣ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국문학에서 2021년은 무엇보다 김수영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 6월15일 밤 서울 마포구 구수동 집 앞에서 버스에 치여 이튿날 숨을 거두었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는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 4·19 혁명과 5·16 쿠데타 같은 현대사의 질곡을 두루 겪었다. 전쟁통에는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체포되어 만 2년이 넘는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시대의 격랑과 개인적 시련을 헤치며 그가 남긴 글들은 두 권의 두툼한 전집(시·산문)으로 갈무리되어 있다.

한국문학사를 수놓은 숱한 이름들 가운데에서도 김수영은 퇴색하지 않는 현대성으로 단연 우뚝하다. 짧아도 반세기 남짓 전에 쓰인 김수영의 시들은 지금 읽어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김수영 시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새롭고 절실한 울림을 주고, 후배 시인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 된다.

김수영 시의 이런 현대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동양적 교양과 서구 합리성의 결합,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회통, 자유를 향한 열망과 정직한 자기반성… 다양한 각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특히 김수영 시의 당대성을 강조하고 싶다. 김수영의 시가 반세기 남짓 뒤에까지도 유효성을 잃지 않는 비결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김수영 자신의 시대와 일상에 밀착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대와 생활을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대부분은 이기지 못했지만, 패배의 기록인 그의 시들은 오히려 시들지 않는 생명력으로 후대의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4·19 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쓰인 김수영의 시들에는 ‘자유’와 ‘혁명’ 같은 거창하고 추상적인 말들이 수시로 출몰하지만, 동시에 ‘설움’과 ‘비애’처럼 섬세한 마음의 결을 드러낸 낱말들 역시 빈발한다. 그는 역사와 전통과 민족을 놓치지 않았지만, 그 곁에는 일상의 악다구니와 비루함이 의연히 자리를 지켰다. 김수영은 아마도 ‘성’(性)이라는 제목에다 실제로 그 행위와 욕망을 소재로 삼은 시를 쓴 최초의 시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돈’이라는 제목을 지닌 작품을 포함해 구지레한 경제활동을 다룬 시들도 그는 여럿 남겼다. 그는 또 일상어를 적극 살려 쓴 시인으로도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수영의 시에서 4·19가 중요한 변곡점을 이룬다는 데에는 연구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1960년 4월19일 절정에 이르렀던 한국 사회의 격동은 김수영 시의 핵심 주제라 할 사랑과 자유와 혁명에 여러 빛깔의 얼굴과 목소리를 주었다. 4·19를 빼고 김수영의 시에 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혁명을 향해 움직여 가는 요동과 상승,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와 ‘가다오 나가다오’에서 분출된 혁명 현장의 흥분과 열기, 그러나 이내 “혁명은 안 되고 (…) 방만 바꾸어 버”(‘그 방을 생각하며’)린 현실에 대한 환멸과 침잠에 이어 “해묵은/ 1961개의/ 곰팡내를 풍”(‘아픈 몸이’)기게 된 1961년 5·16 쿠데타의 절망에 이르기까지 김수영의 시들은 시대와 한몸이 되어 웃고 울었다.

5·16 쿠데타 뒤에 쓴 두 편의 시 ‘먼 곳에서부터’와 ‘아픈 몸이’에서 김수영은 시대의 퇴보를 온몸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먼 곳에서부터’)가 아픔의 단순한 진술이라면,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아픈 몸이’)는 그 아픔을 극복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이다. 어떻게? 결말부에 그 답이 있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한 연습과 함께”

아픔을 극복하려는 행진에는 동행이 필요하다. 아니, 불가피하다. 식구와 친구뿐만이 아니라 적들과 적들의 적들까지 동행하는 “무한한 연습”을 김수영은 강조한다. 오해하지 말 일이다. 여기서 식구·친구와 적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다. 식구나 친구가 곧 적이다. 당신과 내가 적이라는 뜻이다. “적은 너와 나의 마음속 부동산”이라고 이재무 시인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썼다. 60년 뒤를 내다본 듯한 김수영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유독 무겁고 두렵게 들리는 오늘이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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