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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클라이파이와 유스토피아

등록 :2021-03-11 16:52수정 :2021-03-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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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으로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그래도 우리가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가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크게 해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아닐까. 그간 생태론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의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가치가 충분히 보편화하고 공감을 얻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일상의 속박과 불편을 겪으면서 코로나19의 배후에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의 확산은 사회 각 분야에서 그에 걸맞은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가령 지난해 총선에서 녹색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0.21%라는 실망스러운 수준에 그쳤지만,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그 양상이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생태 및 환경 의식을 일종의 기본 자질로서 갖추어야 하게 될 것이다. 기업 역시 생태적 가치에 어긋나는 제품 생산과 산업 활동을 자제하라는 요구에 맞닥뜨릴 것이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도 환경 파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질 것이다. 생태적 취지에서 육식을 포기하는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는 데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예술 특히 문학에서는 어떠할까. 지난해 숨진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생태적 가치와 문학의 결합을 꾀한 선구적 인물이었다. 안타깝게 그가 세상을 뜬 뒤에도 그의 이념과 실천은 많은 후배 문인들에 의해 의연히 계승·발전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클라이파이’라는 신조어에 주목하고자 한다. 영어로 ‘cli-fi’로 표기하는 이 말은 ‘climate fiction’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기후소설’이라고 새길 수 있겠다. 댄 블룸이라는 미국 출신 언론인 겸 환경운동가가 처음 만들었다.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클라이파이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위기를 포착하고 그 괴멸적 결과를 경고하며 그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모색하는 소설(과 영화)을 가리킨다.

클라이파이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줄임말인 ‘사이파이’(sci-fi)와 혈연관계에 있다. 클라이파이를 사이파이의 하위 장르로 보는 이도 있지만, 댄 블룸 자신은 자매 장르 또는 사촌 관계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설명한다. 사이파이가 가깝거나 먼 미래상을 그리는 데 비해 클라이파이는 반드시 미래만을 다루지 않고 현재의 기후위기 실태를 사실적으로 담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파이로 분류할 만한 작품은 특히 영어권을 중심으로 이미 적잖이 나와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마르셀 서루의 <먼 북쪽>, 이언 매큐언의 <솔라>, 로런 그로프 소설집 <플로리다>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너새니얼 리치의 <승산 없는 미래>(Odds Against Tomorrow)도 빼놓을 수 없다. <투모로우> <설국열차> <인터스텔라> 등은 클라이파이의 영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인용한 소설과 영화는 대체로 기후위기가 초래한 암울한 미래를 그리지만, 클라이파이가 반드시 디스토피아일 필요는 없다. 기후위기의 어두운 결과만을 강조하는 행위가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트우드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합쳐 만든 신조어 ‘유스토피아’(ustopia)가 그런 맥락에서 요긴하다. 클라이파이는, 비록 디스토피아적 예측을 담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기후위기를 해결하거나 완화할 적극적 전망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사이파이도 그렇지만 클라이파이는 자칫 추상적이며 막연한 미래상의 제시에 그칠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물론 전 지구 차원의 문제이지만, 그 결과는 국가·계급·세대·성별 등에 따라 매우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권 측면에서 기후위기 문제에 접근한 조효제 교수의 역저 <탄소 사회의 종말>을 참고할 만하다. <한겨레>도 올 초에 ‘기후위기와 인권’이라는 기획기사로 기후위기의 차별적 발현을 보고한 바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삼는 이른바 ‘영어덜트’(YA) 작가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기후위기에 가장 민감한 세대가 청소년들이라는 점에서 클라이파이는 특히 영어덜트 장르에 적합한 까닭이다.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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