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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진보주의자라면 북한도 비판할 수 있어야”

등록 :2020-11-02 14:17수정 :2020-11-03 15:32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09
10월 초 이석기 전 의원이 보내온 1차 답변서. A4 크기의 편지지 다섯장에 앞뒤로 빼곡이 정서를 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0월 초 이석기 전 의원이 보내온 1차 답변서. A4 크기의 편지지 다섯장에 앞뒤로 빼곡이 정서를 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저는 자주가 곧 반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980~90년대 자주가 반미를 의미했던 건 그만큼 우리가 미국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자주를 반미로 이해하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사고방식입니다. 자주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모든 주변국으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 세계 모든 나라의 핵 개발과 보유는 바람직하지 않고, 북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햇수로 7년 넘게 복역중인 이석기 전 국회의원의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건강해보인다’는 말에 이 전 의원은 “이곳에서 잡념 없이 있으니 그런 모양이다”며 웃었다. 그는 ‘잠잘 때 외엔 절대 눕지 않는다’는 수칙을 세우고 지금까지 지켜왔는데, “그렇게 오래 앉아있다 보니 무릎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직 국회의원이던 2013년 8월 구속돼 대법원에서 총 9년8개월 형을 받았다. 처음엔 ‘내란음모’ 혐의였는데, 재판 과정에서 이 혐의는 무죄가 됐다. 대신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가 인정됐다. 9년8개월 중 지금까지 7년2개월을 복역했다. 간첩죄를 제외하고는, 이른바 ‘사상범’으로 이렇게 오래 복역한 경우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찾기 힘들다.

여기엔 그에게 화인처럼 따라다니는 ‘종북’이란 딱지가 영향을 끼쳤다. ‘북한을 추종한다’는 비판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을 합리화했고, 시민사회 안에서도 그에 대한 다양한 찬반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 됐다. 이른바 ‘엔엘(NL) 그룹’이 대중의 지지를 잃은 건, 보수 정권의 정치적 탄압도 있지만 북한에 대한 태도가 더 결정적이라는 지적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석기 전 의원을 인터뷰한 건 이런 두가지 쟁점 때문이다.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를 가두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과, ‘종북’ 논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이고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알고 싶었다. 인터뷰는 두차례의 서면 질문·답변과 한차례 면회(10월14일)를 통해 이뤄졌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피했던 과거와는 달리, “모든 나라의 핵 개발.보유는 바람직하지 않고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라거나 “진보주의자라면 북한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 인터뷰를 읽으며 ‘변한 게 없다’고 말할 테지만, 누군가는 ‘중요한 변화를 읽었다’고 느낄 것이다.

이석기 전 의원
이석기 전 의원

―2013년 8월 긴급체포됐으니 만 7년2개월을 복역한 셈입니다. 감옥 생활은 어떻습니까?

“5년8개월 동안 수원구치소에 있다가 지난해 이곳 대전교도소로 옮겨왔습니다. 콘크리트 담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이야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대전이 여러모로 낫습니다. 우선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그렇습니다. 6년 만에 빗소리를 들었더니 그 밤엔 마음이 설레 잠도 잘 오지 않더군요.”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사면복권 요구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 그러하다고 볼 수밖에 없지요. 저로서는 이와 관련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루 일과와 건강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보통 5시에는 일어나 명상을 하고 글을 씁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명상을 하고 글을 쓰면 뭔가 정리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햇살과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운동 시간이 있습니다. 걷거나 뛰기도 하고 ‘푸시업’을 요즘엔 330개까지 합니다. 오후에는 신문을 꼬박 읽고 접견을 온 이가 있으면 반갑게 만납니다. 나머지 시간엔 책을 읽고 생각을 하는 게 보통이지요. 감옥 안의 생활은 그야말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 나의 내면에 자리한 의지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지요.”

―처음엔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에서 이 혐의는 무죄가 되고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예비적으로 걸어 놓은 내란선동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했지요. 서슬 푸른 박근혜 정권, 그리고 그와 내통했던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서도 세 분의 대법관은 내란선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인데 현역 국회의원의 말을 문제 삼아 9년의 형을 선고한다는 건, 말을 상대로 주먹을 쓴 것입니다. 내란이라는 죄명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 바탕에는 국가보안법적 사고가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국보법이 너무 낡았으니 국민을 놀래고 겁주기 위해 내란이라는 죄명을 끄집어낸 것이지요. ‘내란조작 사건’은 전투적 진보진영을 제거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 반대세력에 ‘종북’ 딱지를 붙이고 국정원과 검찰·헌재와 대법원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탄압한 것으로, 헌법을 무력화한 정치범죄이자 우리 역사에 오점을 남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에서 낭독된 옥중 메시지를 보면, 예속과 분단을 당면 과제로 제시하며 ‘자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게 ‘낡은 진보’라는 비판을 요즘은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비록 정치권 내에서 거의 의제로 부각되지 않고, 심지어 진보적인 정치인들조차 이 문제를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주라는 과제가 허상인 것은 분명히 아니지요. 자주는 민주화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입니다. 지금처럼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미·중 대결이라는 신냉전에서 종속변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저는 자주가 곧 반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주는 특정 국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 국가의 이익을 중심에 둔 사고입니다. 1980~90년대 자주가 반미를 의미했던 건 그만큼 우리가 미국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와서 자주를 반미로 이해하는 건 지나치게 협소한 사고방식입니다. 자주는 미국, 중국, 일본 등 모든 주변국으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작은 나라로 폄하하고 어떤 강대국의 우산 아래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착시입니다. 이제는 평화와 협력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우리가 중심이 된 지정학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는 중국과 같이 가는 식의 편리한 태도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주는 낡은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가는 핵심 가치인 셈이지요. 문재인 정부가 낡은 시대를 마무리하는, 다른 말로 하면 적폐 청산을 자신의 과제로 하는 정부라면 이 문제에서 뚜렷한 전진을 이뤄야 합니다.”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2년 6월5일 당선 뒤 의원으로서 국회 의원회관으로 첫 출근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석기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2년 6월5일 당선 뒤 의원으로서 국회 의원회관으로 첫 출근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정부도 한-미동맹에 대한 태도에선 여전히 자주적이지 못하다고 보나요?

“문재인 정부를 예속 정부로 보지 않으며 박근혜 정부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엠비(MB)-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합의된 전시작전권 반환 문제도 뒤로 미루었고, 대북 정책이나 외교 문제에서 미국을 사실상 추종했지요. 문 대통령의 선의를 믿습니다. 문제는 관료들이 기존 타성에 젖어있다는 거지요. 김대중 정부와 비교한다면 역시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을 미국이 흔쾌하게 지지한 적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먼저 남북 간의 합의를 일으키고 이에 대한 미국의 묵인을 이끌어 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동의를 사전에 얻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미 워킹그룹이 그 테이블인 셈인데, 결과만 놓고 보면 어느 것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진보정당이 위축되고 대신 더불어민주당이 ‘진보’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의 ‘진보’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공자는 정치는 반드시 정명(正名)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보는 것은 착시일 것입니다. 현재의 민주당은 미국식 리버럴(미국 민주당)에 가장 가깝고 그 안에 일부의 진보적 정치인과 일부의 보수적 정치인이 참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양당 대결 구조를 갖는 우리 정치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은 극우적 혹은 수구적 성향을 띠는 정당을 몰아내는 것이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촛불 민중에게 받은 것을 보답하기 위해 애쓸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 위축에는 분열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합니까? 만약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와는 다른 행동을 했을까요?

“진보정당의 정치역량이 약해진 우선적인 이유를 보려면, 박근혜 정부 당시 집중되었던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격과 해산을 짚어야 합니다. 진보정치가 지배세력의 탄압을 받게 되면 일시적으로라도 위축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탄압에 단합하여 맞서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회복을 도모할 수 있지요. 그 점에서 2008년과 2012년 일어난 진보정당의 분열은 무척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의 단결은 중요하고, 진보 진영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단결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진보진영이 하나의 정당으로 집결할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 진보정당에게 중요한 것은 민중과 진보정당의 결합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공법이지요. 현장에 강력히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대중운동 속에서 당의 기반이 튼튼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장과 대중운동 속에 정당정치가 결합할 때 진정한 힘이 나오고, 이런 힘이 있어야 단결도 촉진될 수 있습니다.”

―이 전 의원에겐 ‘북한에 너무 호의적이다’ 또는 ‘종북’이란 평가가 따라다닙니다. 이런 딱지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완전히 잘못된 것인가요 아니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북한정권에 대한 솔직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북과의 관계는 민족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축입니다. 이 문제는 분단체제의 근본 문제이기도 합니다. 북과 관련된 문제를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이른바 '종북' 프레임이고, 또 하나는 북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마지막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세 문제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먼저 종북 프레임은 과거의 독재정권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척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당장 저의 경우가 그러하지요. 저는 내란 사건의 검사들이 "북한과의 연계가 없으니 더 위험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로 기가 막혔습니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마녀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냥은 벌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는 마녀사냥의 기회를 노리는 이들과 마녀사냥의 광기를 두려워하면서 가급적 '마녀로 의심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정치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진보 진영 안에서 이 문제를 놓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3대 문제, 즉 북의 권력 세습, 핵 개발,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이 그것이었지요. 당시엔 세습을 반대하고, 핵 개발을 반대하고, 인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이 없으면 진보라고도 말할 수 없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 문제들은 그때 만큼의 관심사가 아니지요. 확실한 건 북의 체제나 지도부의 문제는 북측의 인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점입니다. 마치 남측의 체제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지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남북 어디에서건 인권이 소중하지 않다고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로서는 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서 대화해야 할 상대로 보는 것이 전제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말은, 북한의 핵 개발과 보유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저는 청년시절 ‘반전반핵’이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전쟁과 핵무기를 반대하는 건 여전한 저의 신념입니다. 이 시기엔 북도 비슷한 입장이었을 겁니다. 다만 우리와 달리 북은 미국의 핵 위협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독자적 핵개발이라 생각했고, 실제 경제봉쇄를 무릅쓰고 핵무기를 개발했지요. 지금 국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핵무기의 국제정치학이라는 논리를 따른 것이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인류의 꿈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점에서 세계 모든 나라의 핵 개발과 보유는 바람직하지 않고, 북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남·북·미 사이의 화해와 평화, 번영의 길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지대화를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북’이란 단어를 처음 쓴 건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 내부입니다. 진보 내부에서도 ‘북한 추종’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컸다는 뜻 아닐까요?

“종북이라는 단어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아마 ‘친북’이라는 말이 더이상 충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들어낸 자극적인 표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 이 단어가 최초로 나왔다는 것이 그 진정성을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한국 민중의 삶에 근거해 창조적인 발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갑니다. 누군가의 경험을 그대로 따르거나, 누군가의 주장을 추종하는 것은 진보의 본질과 배치됩니다. 필요하다면 북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주의자에게 비판에서 자유로운 ‘성역’은 없습니다.”

―요즘 젊은층의 북한정권과 통일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는 다른 거 같습니다. 북한정권을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 정권으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남북 단일팀 구성도 ‘열심히 준비한 선수의 공정한 기회 박탈’이란 시각에서 젊은층은 바라봅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 방향성이 평화와 번영이라는 것이 이미 남북 간의 합의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실제 남북한 사람들의 체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질문하신 것처럼 지금 청년 세대들이 민족 문제나 통일 문제에 관심이 낮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분단이 공고화된 사회에 태어났고 남북관계가 전진하는 것을 실제 체험해 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분단의 가장 심각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청년들 중 절반은 여전히 군에 가야 하고 이로 인해 많은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꼭 필요한 주택이나 일자리, 교육 등에 쓰여야 할 돈은 국방비라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넘어갑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우려에 대해서는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사실 1970년대~80년대 세대들도 ‘때려잡자 공산당’이 현실이었지 그때라고 모두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청년들이 그때보다 북에 대해 더 비판적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입니다.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단일팀만 놓고 보자면 청년들이 남북 단일팀 자체를 반대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기성세대가 이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요. 나아가 단일팀에서 함께 뛰었던 청년들은 어떠했습니까? 남에서 왔건, 북에서 왔건 이들이 쉽사리 하나의 팀으로 뭉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들이 청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건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정의롭고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다음 시대, 그러니까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청년들을 걱정하기보다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를 탐구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저는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남북이 본격적인 협력단계로 진입하게 되면 그 여파는 매우 클 것이고, 지금의 청년 세대들에게 뚜렷한 활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낳고, 변화된 인식은 더 큰 상상력을 낳아 현실을 변화시킵니다. 저는 청년 세대를 믿습니다.”

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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