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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낡은 진보’ 넘자는 게 노회찬의 ‘진보의 세속화’였다

등록 :2020-10-05 16:13수정 :2020-10-06 02:40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07
민주노동당은 창당 4년 만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며 진보정당의 새 시대를 열었다. 17대 국회 막이 오르는 5월31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걸어서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영, 노회찬, 단병호, 권영길, 천영세, 심상정 의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민주노동당은 창당 4년 만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며 진보정당의 새 시대를 열었다. 17대 국회 막이 오르는 5월31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걸어서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영, 노회찬, 단병호, 권영길, 천영세, 심상정 의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세속화란 용어는 썩 긍정적 어감이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용어를 쓴 건, 운동권적 태도를 완전히 벗어나서 현실에 밀착한 정치를 하자는 뜻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 점에서 노회찬은 의회주의자이고, 정당주의자이고, 한편으론 사회민주주의자였다.”

노무현과 노회찬의 ‘진보’ 키워드가 모두 버스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버스가 이들에게 친숙했던 가장 서민적인 교통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버스 승객이 꽉 찼을 때 누가 타려고 하면) 보수는 ‘야, 비잡다, 태우지 마라. 가자’고 말합니다. ‘차장, 쟈들도 태워주자. 어렵더라도 같이 타고 가야지’라며 사람들을 헤쳐서 길을 터주는 게 진보입니다. 내가 어릴 때 부산서 출발해 김해에 오면 늘 김해 정류장에서 요 싸움을 하거든요. 연대, 함께 살자는 게 진보의 가치입니다.”(<진보의 미래>, 2019)

노회찬의 진보는 유명한 6411번 버스 연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새벽 4시에 구로에서 출발해 개포동까지 가는 6411번 버스는 50, 60대 아주머니들로 가득 찹니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저 ‘청소 미화원’으로 통하는 이분들은 존재하되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투명인간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이지만 이분들의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노회찬은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에서 6411번 버스 얘기를 하며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대중정당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현장에서 연설을 들은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쉬운 언어로 진보정당의 길을 얘기할 수 있는 이가 노회찬 말고 또 누가 있을까”라고 회상했다.

가장 대중적인 진보 정치인이었던 노회찬의 온기는 지금도 정의당 곳곳에 배어 있다. 지난해 입당한 장혜영 국회의원은 “실제 만나 뵌 적은 없지만, 1년 남짓 당 활동을 하면서 늘 노회찬의 궤적을 만나게 되더라.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게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6411번 버스 연설도 정의당에 오면서 처음 들었는데, 누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건지가 확 들어오니까, 평범한 언어로 정치를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주니까, 그게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노회찬과 진보정당을 따로 뗄 수 없는 건, 그가 1961년 5·16쿠데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한 첫 세대이고 항상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회찬은 생전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1956년생인데 제3공화국 때 초등학교를 다녔고 유신정권하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녔다.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가 광주민중항쟁 이후의 전두환 시대였다. 나는 학생운동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한 첫 세대에 속한다. 그리고 다시 진보정당 운동으로 나아간 첫 세대가 되었다.”

2004년은 한국 진보정당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해였다. 4년 전인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초대 대표 권영길)은 그해 4월의 17대 총선에서 첫 국회 진출, 그것도 무려 10석을 얻는 쾌거를 이뤘다. 정당 득표율은 13%를 넘었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국민승리21 후보가 얻은 득표율(1.19%)에 비하면 비약적 성장이었다.

총선 승리의 태스크포스는 노회찬 사무총장과 당직자들로 이뤄진 선거대책본부였다. 투표 석달 전부터 매일 아침 8시30분 열린 기획조정회의는, 작은 진보정당이 큰 보수정당 못지않은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회의엔 노회찬 총장을 비롯해 문명학 상황실장, 김종철 대변인, 오재영 조직실장, 이재영 정책실장, 조승범 홍보실장, 박권호 총무실장, 신장식 기획위원장, 황이민 사무부총장이 참석했다. 이 중 네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노회찬 총장 외에 이재영·오재영·조승범 실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찬란한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 중 거의 절반이 지금 우리 곁에 없는 건, 그 이후 진보정당의 힘들고 고단한 여정의 상징과 같다.

진보정당 퇴조의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운동권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열·분당을 많은 이들이 첫손가락에 꼽는다. 여기엔 짙은 회한이 묻어 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운동판에선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엔엘(NL·민족해방)과 피디(PD·민중민주)가 민주노동당을 함께하면서 거의 화학적 결합 직전까지 갔었는데…,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 분열만 하지 않았어도 진보정당 위상은 지금과 현격하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선대본 회의 멤버였던 김종철 대변인(현 정의당 선임대변인)은 “진보정당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창당(2000년 민주노동당)이라면 두번째는 분당(2008년과 2012년)이다. 거기(분당)에 제가 책임이 있고…, 그 후 어려운 10년을 경험했으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슬기로운 방법을 찾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사람이라는 존재, 그리고 집단 사이 관계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갈등을 (진보정당은) 좀 다르게 풀기를 (국민은) 바랐던 것 같다. 그런 노력을 하지 못했고…, 제가 그런 실망을 안겨준 사람의 하나이고,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노회찬도 분당으로 진보정당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펴낸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대담집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에서 “분당으로 내가 초기에 세우고자 했던 진보정당의 상은 사실 무너졌다. 민주노동당 분당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분열이 정말 진보정당을 망친 걸까. 분열과 갈등의 와중에서 진보정당이 놓친 다른 것은 없을까.

노회찬이 ‘보수정당’이라 비판한 민주당이 노무현의 ‘진보’를 받아들여 미국식 리버럴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진보정당이 변화에 굼떴던 것은 아니다. 2012년 통합진보당 파동 이후 갈라져 나온 세력은 진보정의당을 거쳐 2013년 정의당을 창당했다. ‘진보정의당’에서 ‘진보’를 떼고 ‘정의당’으로 이름을 정한 건, 좀 더 대중적인 정당을 지향하자는 고민의 발로였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 사회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정의’ 담론이 분출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계급·계층의 대립보다 보편적 인권과 정의라는 가치에 강조점을 두고, 폭넓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뜻이 당 이름에 담겨 있었다. 이게 옳은 선택인지엔 논란이 있지만, 시대 흐름을 쫓아가려는 노력만은 평가할 만했다.

이 무렵 노회찬은 ‘진보의 세속화’를 강하게 주창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뒤 진보정당 입지가 훨씬 어려워졌을 때였다. 노회찬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는 겁 많은 제1야당(민주당)도 자주 활용하는 좋은 말이 됐고,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박근혜가 만 5세 무상교육을 외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진보와 반진보가 대립하는 게 아니라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가 경쟁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진보의 세속화’란 그간의 관념성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현실 정치를 하자는 것이었다. “진보의 가치는 정치화되는 만큼 실현된다”고 노회찬은 주장했다. 특히 “진보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운동권을 극복해야 한다. 운동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건 흘러간 옛날얘기다. 신앙과 정치는 다르다. 신앙은 자기를 간직하면 되지만, 정치는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해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세속화란 용어는 썩 긍정적 어감이 아니다. 그럼에도 노 전 의원이 굳이 이 용어를 쓴 건, 운동권적 태도를 완전히 벗어나서 현실에 밀착한 정치를 하자는 뜻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개량주의라고 비판받은)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 점에서 노회찬은 의회주의자이고, 정당주의자이고, 한편으론 사회민주주의자였다”고 말했다.

2015년 제정한 정의당 강령엔 ‘사회민주주의 성과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절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 구절은 강령 중간에 삽입돼,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찾기 쉽지 않다. 과거엔 개량주의 또는 과격하다는 좌우 양쪽의 비판에 시달렸던 ‘사회민주주의’가 이젠 진보정당의 전면에 내세우기엔 너무 낡은 단어가 되어 버렸다. 그 점에서 ‘사민주의’란 단어엔 너무 많은 것을 피하려 애썼고 지금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한국 진보정당의 얼굴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다음 회엔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에 관한 글이 실립니다.

박찬수ㅣ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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