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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칼럼] 두 노동자 이야기

등록 :2020-05-21 18:14수정 :2020-05-22 10:23

관두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그랬을까? 임시계약직 노인장, 고용 불안과 갑질에 시달리면서 견뎌야 하는 마지막 일자리, 다른 데 갈 곳은 없는데 먹고살려면 감지덕지 받아들이라는 사회의 시혜적 시선과 결별하라는 인간 내면의 처절한 요구에 응답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몸이 거하는 모든 곳, 집과 배움터, 그리고 일터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든 몸에 침투한다. 그 몸이 부자인지 아닌지, 지체 높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침투 이후의 문제다. 모든 사람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올해 노동절을 이틀 앞두고 38명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경기도 이천 소재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사고로 숨졌다. 이에 대한 관심은 잠깐 뜨거워졌다가 오래 지나지 않아 식고 만다. 나의 불온성은 지금까지 260여명 사망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이라도 매년 2천명에 이르는 산재 사망사고에 간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오래전에 이미 제정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만 기업 이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 않은데,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길들여져 상향 일방적이다.

‘63세 임시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가 달린 <임계장 이야기>는 아파트 주민을 소수의 착한 사람, 다수의 무관심한 사람, 극소수의 나쁜 사람으로 분류한다. 나 또한 무관심한 다수에 속할 것이다. 아파트 주민의 구성이 그렇다면 거의 모든 일터에서 만나는 인간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인간사의 불행과 갈등 또한 대부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믿거나 생각하는 것과 달리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대개 온유하고 소극적인 반면에, 나쁜 사람은 거칠고 그악스럽다. 광신적이거나 극단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체로 열광, 열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오늘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는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선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고 했는데, 20세기 말에 <경제적 공포>를 쓴 비비안 포레스테에 의하면 “무관심은 잔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매우 활동적이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무엇보다도 추악한 권력의 남용과 탈선을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5월10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최희석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갑질 가해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파트 입주민들과는 사이가 좋았던 경비노동자였다고 한다. “윗사람 말에 토를 달려거든 관둬라/ 의자에 앉아 있으려거든 관둬라/ 지하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다 퍼내기 싫거든 관둬라/ 민원이 생기면 무조건 경비원 책임이다. 바로 관둬야 한다/ 주민하고 언성을 높이려거든 관둬라/ 낙엽이 뒹굴게 놔두려거든 관둬라/ 지하실에서 쉬려거든 관둬라/ 근무시간에 휴대폰을 보려거든 관둬라/ 춥다고 지하실에서 전열기를 쓰려거든 관둬라/ 폐기물 버린 사람을 다 찾아내라. 못 찾아내면 경비원이 처리비를 부담해라. 그러기 싫으면 관둬라/ 분실된 택배물은 경비원이 물어내라. 그러기 싫으면 관둬라/ 관두려면 일찍 관둬라” <임계장 이야기>는 이렇게 “관둬라” “관두려면 일찍 관둬라” 하고 조언하는데, 최희석씨도 매일 매 순간 관두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두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그랬을까? 임시계약직 노인장(임계장), 고용 불안과 갑질에 시달리면서 견뎌야 하는 마지막 일자리, 다른 데 갈 곳은 없는데 먹고살려면 감지덕지 받아들이라는 사회의 시혜적 시선과 결별하라는 인간 내면의 처절한 요구에 응답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몸이 거하는 모든 곳, 집과 배움터, 그리고 일터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오늘도 61살의 몸을 사위어가며 이를 시위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 김용희씨는 2019년 6월10일부터 강남역 네거리 한복판 시시티브이(CCTV) 철탑에서 “삼성에 노조 만들다 인생 망쳤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농성 중이다. 그가 왜 삼성에 노조 만들다 인생 망쳤다고 말하는지 동시대인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굴종의 삶이 아닌 자유인을 추구했던 한 노동자에 대한 예의만으로도 그 이유는 충분하다.

그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공장에 입사한 직후 노조를 조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탄압의 표적이 되었다. 괴한한테 칼침을 맞기도 하고 간부들에게 납치되기도 한다. 상사한테 성폭행을 당한 20살 여성 노동자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회사는 거꾸로 그를 성폭행범으로 몰아 해고했다. 이 여성은 공증진술서를 통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고, 그는 복직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삼성은 러시아 건설 현장에 1년간 일하라는 조건으로 그를 복직시켰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도 삼성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직원들한테 결박당하기도 하고 북한의 간첩이라고 한국대사관에 고발당하기도 한다. 1995년에 귀국하자 삼성은 노조활동을 포기해야 복직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삼성에서 쫓겨난 뒤 농성과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삼성 간부들에 의해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고 두 번 체포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정은 완전 파탄이 났다.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됐고 어머니는 그가 구금되었을 때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말한다.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고. 키 180㎝인 그가 지름 150㎝밖에 되지 않는 철탑에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이유다. 그는 또 말한다. 중간에 포기한 채 지상으로 내려간다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5월6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사과했다. 그러나 삼성 재벌이 노동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대하는지 다시금 알게 해주었을 뿐이다. 이 부회장에게 집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철탑의 김용희씨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비롯한 해고 노동자들은 투명인간이었다. 이 부회장의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말은 발언 순간 허공에 흩어졌다. 실상 이 부회장으로서는 김용희씨와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반올림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그의 사과에 진정성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은퇴 선언을 했지만 1년 뒤 복귀했다. 2008년에 이건희 회장은 사퇴와 함께 차명계좌 4조5천억원을 사회 환원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또한 공수표였다. 선대들이 지키지 않은 약속을 반복할 수 없었던 이재용 부회장이 내놓은 건 뜬금없게도 4세 경영 포기 선언이었다.

최희석씨와 김용희씨. 두 노동자는 한국의 배제된 노동이 굴종하지 않으려 할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일 수밖에 없는지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홍세화 ㅣ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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