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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공감세상] 죽은 시인의 사회 / 손아람

등록 :2019-03-20 19:53수정 :2019-03-21 10:05

손아람
작가

직업 작가 몇명이 모이면, 슬프고 괴로운 말의 향연이 펼쳐지곤 한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분석하고 성토한다. 어느 술자리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불평꾼들이 공감과 지지로 서로를 보듬는 광경이다. 쏟아진 생각들이 손에 잡히는 물질과 변화로 좀처럼 환산되지 않기에 우리를 부질없이 무가치한 존재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같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거나 고백하지 않는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은 술자리의 안줏거리처럼 곧잘 소진되어 버린다. 생각은 스마트폰처럼 매일같이 꺼내 보는 것이 될 수도 없고, 컴퓨터 게임처럼 누군가를 사로잡을 수도 없고, 영화와 드라마처럼 열광적이거나 음식처럼 자동적인 갈증을 유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을 쓰는 일은 생산성과 대가 모두 불확실하고 비현실적인 노동이어서 그것을 노동이라 부르는 것조차 꺼림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세상의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믿지만, 정작 세상은 그것을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괴리가 절벽처럼 벌어지면 우울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작가들은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다 우물에 빠졌다는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와 같은 사람들이다. 시선을 별에서 거두어 자기가 빠진 우물을 둘러보는 순간 자괴감이 엄습한다. 자의식이 예민한 만큼 우물은 심연처럼 깊어 보인다. 그래서 생각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대개 크고 작은 우울함에 시달린다. 생각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와 시대를 탓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생각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한참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부조리는 세상의 탓이지만 우울함은 오로지 생각하는 자들의 몫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조리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는다. 저 멀리 치워두고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나아간다. 작가들은 생각을 쓰기에 우울한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잠재된 기질 때문에 생각을 쓰는 일을 택하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해온 지인을 만났다. 의사인 그는 병원을 정리하고 글을 쓰려 한다며 조언을 구했다. 자신의 일이 근본적인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결심의 때를 놓치면 그 상황이 죽을 때까지 지속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나는 그의 경험 범위를 넘어서는 가난에 대해 경고했고, 그는 ‘한번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그의 오랜 고민으로 대답했다. 가난은 감수할 만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화석처럼 희미해진 기억이 되살아났다. 작가의 길을 고민하던 20대 시절이었다. 나는 내 생각이 경제적으로 무가치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봐 두려웠고, 생각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갈증에 시달렸다.

이 의사의 결단은 매우 드문 것이지만 그가 도달한 고민은 흔한 것이다. 생각의 실용적 가치가 작아질수록, 생각의 용도가 줄어들수록, 생각에 대한 굶주림은 커진다. 그래서 작가를 직업으로 택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저에는 비슷한 동기가 있다. 직업에 대한 회의, 의무로 포화된 가족 계약의 해체, 대인기피증과 같은 음성적 언어소통의 장애, 성폭력 피해의 경험, 내가 끌리는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살고 싶다는 이기심. 서로 다른 이유로 생각을 표현할 기회와 방법을 찾던 사람들이 한길에서 만난다. 전공 공부 때문에, 혹은 우연한 구직의 결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사람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생각이 많아서 고통받는 작가들이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 작가가 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딜레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직업인으로서 작가와 출판인들이 하는 고민이다. 하지만 쓰기는 읽기보다 근본적인 욕망이다. 작가를 죽인 게 단지 풍선처럼 쪼그라든 출판시장 때문일까? 엄격한 직업적인 기준에 미달하여 칭호를 박탈당한 작가들은 점점 늘어난다. 이 일을 욕망이 아니라 직업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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