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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최현숙의 말 쓰기] ‘춤추는 허리’의 여자들

등록 :2017-12-17 19:25수정 :2017-12-17 19:28

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자리에 앉자 눈에 들어온 건, 무대 오른쪽 귀퉁이에서 머리를 객석 쪽으로 놓고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여자다. 비틀리고 가느다란 다리, 객석을 향해 꺾이듯 젖힌 목과 머리, 일그러진 얼굴, 벌어지고 비뚤어진 입, 휘둥그런 눈, 뒤틀린 채 통제되지 않고 흔들리는 팔, 꼬이도록 뒤틀려 뼈가 부러질까 봐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감은 붕대. 마이크와 원고 뭉치로 보아 디제이 이보희. 극단 ‘춤추는 허리’ 2017년 공연 개막 직전이다.

내가 그녀들을 찾아간 건, 2004년 초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직을 사퇴한 직후다. 당직을 맡은 동안 많은 여성들에게 소위 ‘연대’라는 걸 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관객으로 함께한 ‘장애여성공감’의 문화제는, 미처 소화가 안 됐다. 각양각색 여자들의 빛깔과 노래, 휠체어와 몸이 함께 추는 춤, 뇌병변장애로 제멋대로 뻗는 동작과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몸짓, 중복중증장애로 인해 웃음인지 울음인지 헷갈리는 표정과 소리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공연자들의 수다. 소위 ‘정상’이니 ‘아름다움’ 따위를 뒤흔들며 내 안의 학습된 인식과 감성들을 통째로 의심하게 된 건 깨어짐이라 치고, 그 자리에서 옮아와서도 내내 떨쳐지지 않은 위안은 대체 무엇인지. 당직 사퇴 후 그녀들의 연극팀 ‘춤추는 허리’에 비장애 배우로 끼어든 건, 내 위안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가 첫 번째 이유다.

2년간 크고 작은 공연들과 제주도 여행을 함께 하며, 많은 연습과 만남과 협의를 했고, 혼돈과 오류와 질문과 고생을 했다. 한 배우의 활동보조를 맡아 집으로 간 날, 그녀가 한 번의 외출을 위해 부딪쳐야 하는 갖은 반대를 보았다. 그녀들의 싸움에도 함께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리프트가 고장 난 계단들.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저상버스나 장애인 콜택시. 이동에 관한 휠체어 장애인들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신경질이 나는 것은, 속도와 효율에 관한 내 강박이다. 지하철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거나 휠체어마저 버리고 한강대교를 점거하며 느리고 시끄럽게 기어가는 장애인들을 보며 느끼는 통쾌함은, 내 강박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렇다면 위안은, 속도와 효율의 돈맛에 속아 매트릭스에서 근로자와 자궁으로 배양되는 비장애인들의 세상에서, 근로자로도 자궁으로도 쓸데없다며 밀쳐진 존재들이 노는 판에 끼어들었다가 문득 알아챈, 반역의 꿀맛이다.

올해 작품은 3막극 <불만폭주 라디오>. 주인공들의 이름을 빌려 모든 공연진에게 늦은 감상문을 전한다. 발달장애여성 조화영/들을 향한 온갖 엄마들의 보호와 걱정에 붙들리지 말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통장을 만들고 돈을 모아 심란한 일들을 더 만들기를. 자녀들과 남편과 뇌병변중증장애여성이 함께 사는 온갖 뒤죽박죽에도 불구하고 이미 늦어버린 회의에 가기 위해 활동보조 없이 혼자 밤길에 나서, “중심을 잡고 싶다”고 외치는 이준애/들. 홀로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가, 치열하게 중심을 잡고 있을 때입디다. “결국 나는 비장애인의 공연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것이냐?”고 자신과 관객에게 묻는 연출가이자 배우 서지원/들, 누구에게도 묻지 말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가시기를. 자신 속으로 느리고 질기게 길을 뚫고 있는 당신들 덕으로, 다른 세상은 한 뼘씩 넓어지고 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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