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6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
프랑스 쉬드(S.U.D.: 연대-단결-민주) 노조에서 일하는 여성 활동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유럽 몇 나라의 노총을 방문한 길에 파리에 들른 민주노총 활동가가 “역대 정권의 반노동 정책과 제1 기업인 삼성 재벌의 온갖 탈법을 통한 ‘무노조 원칙’ 관철 등의 어려운 노동 환경 속에서도 60여만 조합원이 민주노총의 깃발 아래 모였다”는 내용의 말을 했을 때였다. 자랑스럽다는 듯 자못 호기롭게 말했던 민주노총 활동가는 그녀의 조건반사적인 질문 앞에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나도 묵묵부답이긴 마찬가지였다. 잠시 열패감 같은 게 무겁게 지나갔던가.
귀국하면서 곧 진보정당 당원이 되고 <한겨레>에서 근무하는 동안 노동조합원으로 남아 있던 게 당연한 일이었던 것처럼, 지금까지 삼성 제품과 인연을 맺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된 것은 그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던 그녀의 모습이 15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에 민주노조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삼성과 인연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 한국의 노동자들 사이에선 유별난 일로 비칠지 모르지만 유럽 노동자들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반응에 가깝다. 이를테면, 나의 ‘삼성 보이콧’은 내 의지의 소산이라기보다 20여년의 유럽 생활이 준 직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를 무시하고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재벌 기업을 용인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원에겐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본이 없어 품을 팔아 생존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인간 영혼을 가진 노동자로서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누구 말대로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이 간단한 이치가 한국에서는 왜 유별난 일이 되는 걸까? 내 경험은 삼성 없이 살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뿐인가. 백혈병이나 희귀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스러진 노동자를 ‘나 몰라라’ 하는 삼성이다. 어느 날, 황상기씨가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내 딸 유미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울었다. 내가 어떻게 민주노조 없는 삼성을 가까이할 수 있겠는가.
한편, 이 또한 사회 구성원들의 직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겠다. 워낙 권위주의 독재가 오랫동안 지속된 탓도 있겠지만, 노동을 배제한 채로도, 또는 노동과 분리된 채로도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다는 관념이 유포된 것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을 조금만 되돌아봐도 그것이 가당치 않다는 점은 금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개혁세력조차 시장권력에게 간택되는 게 정치권력 장악의 길임을 간파했기 때문일까? 가령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인물이 삼성 총수와 독대하는 광영을 누렸다는 얘기를 가소로운 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본권력 수하에서 국가 경영의 자격이 있는지 면접받은 일인 양 부러워하는 게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의 대체적인 품새다. 비정규직 ‘보호’라고 강변하면서 비정규직 관련법을 통과시켰지만, 그것이 ‘양산’으로 귀결되었음에도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당시 노동부 장관은 오늘 박근혜 정권 아래 노사정위원장이 되어 ‘노동개혁’이라고 불리는 노동재앙을 불러들이는 데 공을 세우고 있다.
민주개혁세력이 물꼬를 터주었으니 수구세력한테 거칠 게 있을까. 바야흐로 21세기 한국 땅에 ‘사용자 마음대로’의 19세기식 노동세계가 펼쳐질 판이다. 정리해고를 넘어 일반해고를 할 수 있고, 비정규직은 2년에서 4년까지 연장하고, 임금 삭감(피크제)도 하고, 단체협약을 무력화하여 민주노조를 파괴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사용자에겐 지상천국이 따로 없고 노동자에겐 ‘헬조선’이 따로 없다.
엄중한 시기… 그러나 솔직히 말해야 할 것이다. 자본권력은, 그리고 정치권력은 민주노총에서 들려오는 “총파업투쟁”이라는 말을 종이호랑이의 하품 소리처럼 듣게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지배세력한테 막힘없는 관철의 연속이 마침내 ‘사용자 마음대로’의 오늘에 이른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를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들이 기득권층에 편입되어 변혁적 노동운동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노동에 대한 부정을 부정하는 실천으로서 ‘삼성 보이콧’이라는 어렵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은 공동행동조차 효과적으로 펼치지 못하면서 1998년 이래 지속된 수세적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누군가 영화 제목에서 따와 가르쳐주기도 했다. “한 놈만 패자”고. 그 옆에서 누군가가 덧붙였다. “아픈 데를 때리자”고. 그러나 시민사회 속속들이 촉수가 닿아 있는 건가, 삼성 보이콧은 진보정당에서도 민주노총에서도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다. 국가기관을 농단한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지거나 <삼성을 생각한다>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불 지필 계기가 있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작년 5월 삼성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입을 통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거나 사망한 직원들과 가족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며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황상기씨를 비롯한 피해 유가족들과 반올림 활동가들의 지난하고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시민사회가 그들에게 빚진 것이다. 반올림, 가족대책위, 삼성의 3자 동의 아래 조정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있는 듯 보였다. 김지형 전 대법관, 정강자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는 2014년 12월부터 5차례의 조정기일을 거쳐 2015년 7월23일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삼성전자가 1000억원,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적정 규모 액수’의 기부를 하여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과, 공익법인이 환경·안전·보건·관리 분야 등 전문가 3인을 옴부즈맨으로 임명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점검해 개선방안을 권고할 것, 그리고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공개 사과 등이었다. 이 권고안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최민 활동가가 ‘4·16 인권선언’ 제정위원회의 토론 자료에서 피해자들의 권리로 인용한 1) 진실에 대한 권리, 2) 정의 실현에 대한 권리, 3) 배상에 대한 권리, 4) 재발 방지와 제도 개혁에 대한 권리에 비추어 과다한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삼성은 역시 삼성이었다. 그들의 사과는 실상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상영되고 국내외 여론이 더욱 나빠지자 그 화살을 피해가면서 반올림을 고립시키기 위한 첫 과정이었다. 삼성은 기어이 조정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통해 개별 보상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삼성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성 앞에 감히 고개를 들고 권리를 주장하면 고립시켜 배제하겠다는 의지의 관철이기도 하다. 여기에 허접한 신문과 방송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아예 삼성 홍보실에 바칠 기사를 쓰기로 작정한 ‘기레기’들이 막장 춤을 추고 있다. 반올림은 10월7일부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홍보관 앞에서 노숙 농성에 들어갔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하 수상한 시절, 갈수록 희귀종이 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로 가라. 거기에 <또 하나의 약속>에서 화면 가득히 다가왔던 울산바위처럼 늠름한 황상기씨가 있고, 반올림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계속 떠들어댈 것이다. “한 놈만 패자!”, “아픈 데를 때리자!”고.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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