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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세상 읽기] 수학,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 윤태웅

등록 2015-07-29 18:31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합니다. 거북이는 1초에 1미터를 가고 토끼는 10미터를 달릴 수 있습니다. 하나 마나 한 경쟁이 되지 않도록 토끼가 10미터 뒤에서 출발하기로 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토끼는 1초 뒤에 거북이가 출발한 지점에 도달합니다. 그사이 거북이는 1미터를 전진합니다. 격차는 1미터로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합니다.

토끼는 다시 0.1초 뒤에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거북이는 또 0.1미터를 앞서 갑니다. 거북이가 있던 자리까지 토끼가 이동하는 동안 거북이는 좀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지요. 이런 과정은 영원히 반복됩니다. 그럼 어찌 되는 걸까요? 토끼는 영영 거북이를 따라갈 수 없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토끼가 거북이를 추월할 것임을 압니다. 이른바 제논의 역설입니다. 수학의 원형을 만든 그리스인들이 위대한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설령 경험한 바 있다 해도 말입니다.

제논의 역설은 이제 더는 역설이 아닙니다. 어떤 수들을 무한히 더해도 그 합이 유한해질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요? 무한급수의 극한과 수렴이라는 개념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극한의 개념은 미적분학의 단단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 만물을 정량적으로 기술하는 수학적 언어인 미분방정식은 이렇게 극한의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단 1년의 준비를 거쳐 곧 발표될 예정입니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한겨레>에도 소개된 바 있는 수포자(수학 포기자) 전국 실태조사 결과와 맞물려서인지, 특히 수학교육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 보입니다. 주된 논란거리는 ‘많은 학습량’입니다. <한겨레>도 최근 사설을 통해 수학 포기라는 낯부끄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학습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수포자가 많이 나오는 상황을 공부 범위가 넓다거나 내용이 어려운 탓으로만 돌릴 순 없습니다. 똑같은 대상을 다루더라도 불필요한 부담을 없애고 핵심 개념에만 집중하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교육과 평가 방식은 그대로 둔 채 학습 주제의 폭만 좁히는 데 그친다면 수포자를 줄이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 수학을 포기하지 않은 학생들에겐 더 안타까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

수학은 사유 방식입니다. 토끼가 거북이를 곧 추월할 거라는 경험적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이를 의심하며 논리적으로 따지려는 게 바로 수학적 태도입니다. 수학은 학생들이 자유롭고 유능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소양입니다. 이토록 중요한 수학이 쉬울 수만은 없겠지요. 그러니 어려운 수학을 피하자는 이야기는 조금은 형용모순에 가까운 논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못된 것은, 생각하는 연습을 하도록 하는 대신 반복 작업만 기계적으로 강요하다시피 하는 교육 방식입니다. 물론 이를 조장하는 대학입시 환경과 경쟁체제의 현실도 잘 헤아려야 하겠지요.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빼고 학습량과 난이도만을 논점으로 삼는다면, 그건 공허한 일입니다. ‘쉬운 수학’과 ‘학습량 감축’을 이야기하는 교육부, 교육부 시안이 어려운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여전히 문제라는 시민단체, 그리고 특정 주제는 반드시 가르쳐야만 한다는 전문가, 이들 모두 핵심을 벗어난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내용을 공부하든 학생들이 제대로 된 수학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 여깁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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