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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크리틱] 인공적 자양강장제 / 문강형준

등록 :2015-03-20 18:39수정 :2015-03-20 18:39

최근 몇 년간 생겨난 가장 강력한 예능 트렌드는 ‘체험’에 관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은 연예인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셀레브리티로서 대중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들이 자신들뿐 아니라 대중도 쉽게 접하기 힘든 일들을 몸소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즐거움과 감동, 교훈을 유발하는 포맷을 가지고 있다. 이런 연예인들의 체험 예능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농어촌, 육아, 오지, 군대가 그것이다. 체험의 장소나 소재는 달라도 효과는 동일하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은 궁극적으로 모두 정서적 ‘힐링’을 추구하는 데 힘쓴다.

‘농어촌’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힘들고 지치거나 혹은 실패한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들에게 감정적 안정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다시 일어서서 도시라는 전쟁터로 나갈 수 있게 만든다. 도시의 편리함 대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농어촌에서의 생활은 신체의 활력을 회복시킴으로써, 도시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무한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삼시세끼>에서 그려지는 농어촌은 정확히 이런 모습이다. 텃밭에서 야채를 뜯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손수 밥을 해 먹고, 작은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같이 누워 자는 경험을 통해 출연자들은 도시 생활에서의 정서적 피폐함과 신체적 피로를 회복한다.

이러한 ‘농촌’의 기능은 ‘육아’에서 동일하게 변주된다. 농촌이 그렇듯 남편/아빠가 아내/엄마 대신 아이를 키우는 일 역시 힘들지만 정서적 행복감을 선사해준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이 보여주듯, 아이를 키우는 연예인 남편/아빠는 연예활동(도시)을 벗어나 육아활동(농촌)에 하루 이틀 전념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도외시했던 다양한 감정노동과 신체노동을 겪음으로써 이전에 ‘몰랐던’ 무언가를 깨달으며 행복해한다.

‘리얼’을 표방하는 이 예능 프로그램들은 철저히 기획된 것이며, 이 기획은 도시-남성-노동자라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 주체가 농촌과 아이라는 ‘타자’를 만남으로써 겪는 신체적 고됨과 이 고됨이 주는 정서적 행복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먼저 아픔, 고통, 힘겨움이 있어야 하듯이, 대중문화는 이 아픔과 고통, 힘겨움을 인공적으로 제공한다. <진짜 사나이>(군대생활)와 <정글의 법칙>(오지생활)도 마찬가지다. 규율, 제한, 힘겨움의 무대라는 점에서 군대와 오지는 농촌과 육아의 또 다른 반복이다. ‘힐링 예능’은 밀린 일을 위해 밤샘 야근을 준비하는 이들이 마시는 ‘핫식스’가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으니, 즉 다가올 ‘진짜’ 고통을 어떻게든 견뎌내게 만드는 인공적 자양강장의 역할이 그것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인공적 자양강장제가 필요한 이유는 대중문화가 필요한 이유와 같다. 노동과 경쟁으로 가득한 대중의 진짜 삶의 조건, 그 초라하고 치열한 삶의 모습을 짧지만 여운은 긴 상상적인 쾌락으로 채우고, 이를 통해 진짜 삶을 견뎌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견디라’고 하는 것은 사업가 기질이 농후한 멘토들만의 몫이 아니다. 바쁘고 지친 우리들 ‘대신 놀아주는 사람’ 역할을 하는 연예인들은 오지에서, 육아를 하며, 군대에 가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이미 우리 삶에 만연한 고통을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경험한다. 새롭고 드물기에 그 고통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이 되며, 때로는 신선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자양강장제가 그렇듯, 그 인내와 기쁨은 더 본질적인 것, 즉 노동에의 전면적 몰입을 응원하기 위해서만 의미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대중문화가 이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노동을 소외시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리 시대의 어떤 특징이 이런 인공적 자양강장제를 끊임없이 요구할 뿐이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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