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불상사를 겪고 나면 다음에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민감해진다는 의미일 텐데, 현실은 꼭 그런 것이 아니다. 자라를 보고 또 보다 보면 오히려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자라가 보이지 않으면 허전해지는 지경에 이른다면 최악의 경우다. 자라에게 물리면 아프니까 자라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자는 전제는 사라지고, “거봐, 솥뚜껑이 아니라 자라 맞지? 자라들은 늘 나오더라고” 정도를 파악하고는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관심을 적당히 떨쳐버린다든지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런 자라 가운데 하나가 정권의 감시와 검열이다. 현대사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 각종 독재정권 기간 동안 늘 당해온 부분이고 그 피해 또한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건강한 민주제 사회의 측면에 대해서도 결코 경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호되게 당했던 사회치고는 정치적 감시와 검열이라는 사안에 대단히 관대하다.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는 국가‘보안’법 같은 큰 틀이든, 개별 정치사건이든 그렇다. 2년 전 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을 한번 다시 기억해보자. 여당 의원이 어떤 녹취록을 바탕으로 야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했는데, 그 대화 내용은 당대표실에서 이뤄지고 따로 공개된 바 없었기에 도청이 아니면 입수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영방송 기자가 연루됐다는 정황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런 노골적으로 ‘워터게이트’스러운 사건조차, 잠시 들끓던 여론이 식자 수사가 흐지부지되며 누구 하나 공식적 책임을 지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해당 의원조차 정치적 자중 같은 의례적 과정도 없이 바로 이듬해에 문방위원장이 되었다.
그런데 현재 진행중인 어떤 사건은 더욱 기막히다. 알고 보니 국정원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국장의 지시와 직원의 임무 수행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들에 현 정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반대하는 정치적 댓글을 열심히 달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건이 들통나서 쟁점화되자, 내부 제보자 색출에 나서 한 직원을 파면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해코지하였다. 물론 온라인 게시판의 방대한 게시물 양과 거친 질을 생각할 때, 여론을 움직인다는 결과를 그들이 원하는 만큼 얻어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하지만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만큼은 충분히 증명되었고, 국가기관이 정권에 대한 복속을 자처하며 감시, 검열에 나섰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여론의 관심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혹시 우리는 이미 “아, 국정원이 댓글질에 개입했구나. 역시 국가기관은 한통속이고 뒤에서 조작을 하는 것이 맞구나” 하며 확신의 만족감을 얻은 후 다른 이슈로 관심이 건너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 치사하지만 당연한 현실이라고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감시와 검열이 민감한 상처였던 한국 사회이기에 더욱 그런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런 짓을 한 자들, 그런 것으로 이득을 본 자들은 두고두고 크게 경을 친다는 사회적 교훈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겹다 싶을 정도로 계속 끄집어내어 후속 보도를 하고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당연하게도 정계가, 그리고 여론의 본질인 개개인들이 모두 함께 할 몫이다. 솥뚜껑을 볼 때마다 놀라는 것은 호들갑스럽지만, 자라가 나왔는데도 무심하면 물린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