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봄의 일이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큰딸이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섰다. 입시 공부를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알바라니, 내심 마뜩지 않았다. 아이의 일터는 서울 홍익대 앞 24시간 편의점. 손님이 몰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고 시간당 4320원을 받았다. 정확히 그해 최저임금(올해는 4580원)이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편의점 알바가 흔한데 붐비는 때라 대우를 해줬거니 생각했다.
아이의 알바는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을 줬다. 서로 한층 살가워진 것이다.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일요일이면 밤 12시께 편의점으로 찾아가 함께 ‘퇴근’을 했다. 버스의 맨 뒷줄에 앉아서 아이는 내 어깨에 기대 깜박 잠이 들기도 했고, 때론 슬그머니 내민 나의 손을 머뭇거리지 않고 잡아주기도 했다.
어느 날 버스에서 아이가 물었다. “나는 일주일에 꼬박 12시간을 일해도 한달에 겨우 20만원인데 왜 언니는 일주일 2번 과외에 40만원을 받아?” ‘스카이’(SKY) 대학에 다니는 친척 언니의 알바에 대한 투정과 부러움이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불평등하고 공정하지 않아.” 불쑥 대답했다가 입을 닫았다. 그러곤 미안했다. 세상이 불공정해진 게 적잖이 부모 세대 탓이고, 그 불공정을 해소할 책임이 상당한데도 마치 남 얘기 하듯 했으니. 그 뒤 한동안 스타벅스 가기가 꺼려졌다. 아이의 1시간 노동과 커피 1잔의 가치가 동일시되는 걸 불편하게 느낀 탓이다.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최소 조건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책상머리에서 관념적으로 써내려간 최저임금의 문제를 아이는 피부로 느끼게 해줬다. 가난한 대학생은 편의점에서 하루에 8시간씩 꼬박 111일을 일해야 한 학기 등록금 384만원(2011년 4년제 사립대 기준)을 간신히 마련한다. 학업이나 취업 준비는 ‘그림의 떡’이다. 대학 졸업 여부와 관계없이 백수 신세이거나, 한달에 100만원도 되지 않는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 청춘들도 허다하다. 이 젊은 20대들에게 이 세상은 과연 꿈을 꿀 수 있는 곳일까.
하지만 사람은 참 간사하다. 아이가 석달 동안의 알바를 끝내자 최저임금은 어느샌가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다시 스스럼없이 스타벅스에 갔고, 알바 1시간의 가치도 그다지 떠올리지 않게 됐다. 매장의 알바생들이 ‘또다른 큰딸’들임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할 당사자는 자신뿐이다. 다른 이들은 관심만 가져줘도 고마울 따름이다. 무엇인가 바꾸고 싶다면 스스로 나서야 한다. 그 유력한 수단이 바로 투표다. 다만 46.6%로는 어림도 없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20대는 딱 그만큼 투표했다. 당시 50대의 투표율 76.6%와는 현격한 차이다. 50대의 힘으로 당선된 후보는 청춘들의 고민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청춘들의 삶이 유난히 팍팍했던 이유다.
그렇다고 20대의 투표율이 늘 낮았던 것은 아니다. 16대 대선(2002년)에선 56.5%였고, 15대 대선(1997년)에선 68.1%였다. 1992년 14대 대선은 71.5%를 기록했다. 물론 14대 대선의 50대 투표율은 89.9%였지만, 20대와 50대의 투표율 격차가 17대 대선의 30%포인트만큼 크지는 않았다.
비싼 등록금에 더는 눈물 흘리고 싶지 않다면,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을 받고 싶다면, 더 많은 정규직 일자리를 바란다면 청춘들은 투표해야 한다. 자신의 꿈에 한 발짝 가까운 후보에게. 오늘이 그날이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