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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글쓰기 접는다

등록 :2012-09-23 19:25수정 :2012-09-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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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언론인
고종석 언론인
[고종석 칼럼] 절필
글쓰기가 생업이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글짓기 시간에 내가 쓴 글이 교실 뒷벽에 내걸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중고등학교 때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탄 기억도 없다. 그러니, 시 단위 백일장 대회에 학교 대표로 뽑혔을 리도 없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은 너무 또렷해 보였다.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대학생 시절, 리포트를 써내는 것은 언제나 고된 일이었다.

그런데 첫 직장이 신문사였다. 끝 직장도 신문사였다. 신문기자 말고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얄궂은 일이다. 글쓰기에 무능했고 글쓰기를 싫어했던 내가 글쓰기로 먹고살았으니 말이다. 기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학을 마칠 무렵, 가까운 친구가 <일간스포츠>에 난 자매지 <코리아타임스> 기자 모집 공고를 가위로 오려다 건네준 게 계기가 되었다. 삶은 막막했고,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구직 원서를 냈는데, 덜컥 취직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가 직업적 글쓰기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 글은 국문이 아니라 영문이었다.

<코리아타임스>에서 나는 스포츠와 경제에 대해 썼는데, 이 분야 기사는 다소의 전문성만이 아니라 스타일도 필요했다. 괜한 겸손을 떨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둘 다를 충족시켰다고 자부한다. 창의력이 발휘된 기사들은 아니었다. 나는 소위 4대 통신사의 스포츠 관련 기사에 줄을 그어가며 스타일을 익혔고,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와 <이코노미스트>를 정독했다. 1985년엔가, 일본 외신기자 클럽이 아시아 지역 기자들을 대상으로 영문 에세이 콘테스트를 연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한국 학생운동과 언론’이라는 제목의 글로 그랑프리를 받았다. 상금으로 받은 50만엔의 일부로 편집국 동료들과 푸지게 회식했던 기억이 난다.

시절이 하 수상했으므로, 내가 <한겨레> 창간에 가담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한겨레>로 자리를 옮겼을 때, 한국어로 글을 잘 써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창간호에 실린 언론 관련 기사를 비롯해, 첫 한 해 동안 내가 <한겨레>에 쓴 글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낯이 뜨거워지리라. 특히 맵시와 기품을 함께 갖춘 문화부 동료 조선희의 기사에 아득하게 주눅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모국어로 기사를 쓰는 데 익숙해졌다. 문학과 학술을 다룬 내 기사는 그 스타일만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일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내가 글쓰기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게 그즈음인 것 같다. 1992년 가을부터 1993년 봄까지 아홉 달간 나는 파리에서 ‘유럽의 기자들’이라는 저널리즘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거기서는 불어로 기사를 써야 했다. 내 더듬거리는 불어와 깔밋한 기사 문장 사이의 괴리를 동료들은 신기해했다. 그때, 나는 어쩌면 내게 문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2005년 <한국일보> 논설위원직을 끝으로 출근 생활을 접었을 때, 나는 한 움큼의 이름을 얻은 글쟁이가 돼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글쟁이로서, 다시 말해 얼치기 기자이자 얼치기 소설가이자 얼치기 언어학자로서 독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소수의 독자들이 내 글에 호의적이긴 했지만, 내 책이 독자들에게 큰 메아리를 불러일으켜 많이 팔려나간 적은 없다. 설령 내 책이 꽤 팔려나가고 운 좋게 거기 권위가 곁들여졌다 해서,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그리도 많은 글을 쓴 백낙청이 통일부 중하급 관료나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보좌관만큼이라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 달포 전쯤, 술자리에서 친구 차병직이 자조적으로 “책은 안철수 같은 사람이나 쓰는 거야! 우린 아니지!”라고 말했을 때, 나는 진지하게 절필을 생각했다.

오늘로, 직업적 글쓰기를 접는다. 언젠가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접는다. 생계무책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게 생이 막막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지난 30년간 내 글을 읽어주신 이름 모를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고종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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