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해져 간다는 것은 남을 설득하려는 마음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좀더 넓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젊은 나이에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나와 생각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봤을 때라도 그를 원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삶에 대한 내 의견이 성장하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주변 환경에서 인연이 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면, 성장 배경이나 인연이 나와는 다른 사람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Haidt) 교수의 연구가 상당히 흥미롭다. 하이트 교수는 스스로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어느 날 보수 성향의 사람들을 좀 깊이 이해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많은 미국 사람들은 왜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민주당보다 부자들을 더 위하는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지 궁금해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옳은데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종종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이트 교수에 따르면 그 이유는 사람이 무엇에 대해 판단할 때 이성보다는 태어남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본능적 직감에 의해 바로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이성은 직감이 먼저 판단한 것을 나중에 왜 그 판단이 옳았는지 밝혀내는 쪽에 주로 이용된단다. 그래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 이성적인 언어로 아무리 설득을 하려고 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단다. 이 다섯 가지 직감은 1)연약한 대상을 보살피려는 본능 2)공정해야 한다는 본능 3)자기가 속한 그룹에 충성해야 한다는 본능 4)윗사람을 공경해야 한다는 본능 5)순결과 신성함을 소중하게 여기는 본능에 기반을 둔단다. 이 다섯 가지 본능 때문에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본능 가운데 첫째와 둘째의 본능은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 발달되어 가지고 있다. 만약에 모르는 어린아이가 차가 오는 도로에 뛰어들려고 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붙잡으려고 한다. 또한 공정하지 못한 상황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는 본능도 보편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나머지 본능은 보수 성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이 발달된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애국심을 무척 중요시하고,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경하며, 혈통이나 성의 순결성, 종교 의례의 신성함을 강조한다. 반대로 진보 성향의 사람들에겐 자기가 속한 그룹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다름도 인정해주려고 하고, 권력자를 향한 존경보다는 그들에 의해 공정함이 손상되지 않는지 감시하려고 하고, 순결이나 신성함의 추구가 오히려 약자들의 권리를 누른다고 생각한다.
하이트 교수의 이 연구는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주는데, 사회적 약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당인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이유가 단순히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느끼는 나머지 세 가지 본능을 그들은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 세 가지 본능적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혁명이 있는 가운데서도 사회질서가 유지되었고, 또 어느 한쪽만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면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미국의 예이지만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들도 하이트 교수의 연구를 참조해보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혜민 미국 햄프셔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