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문제는 진보진영이 안고 있는 곤혹스런 주제 중 하나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니 남북관계 악화를 초래할 게 뻔하고, 모른척하자니 양심이 찔린다. 더구나 보수진영은 이런 약점을 파고들어 사정없이 정치공세를 펼친다.

북한 인권 문제가 우리 사회의 관심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북에서 가뭄과 식량난으로 아사자와 탈북자가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다. 대략 김대중 정권 출범과 비슷한 시기다. 먼저 유엔 인권위에서 유럽연합 국가 등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의 싹이 텄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 주민의 정치·사회적 인권의 신장 및 보호보다는 생존권 보호가 최우선이라고 자세를 취했다. 식량을 지원해 굶지 않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 인권 개선에 기여한다는 논리였다. 큰 것을 풀면 작은 것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발상이었다. 옳은 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때 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진보진영의 주장과는 다른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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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무대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처음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유엔 인권위(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였다. 이때 우리나라는 표결에 불참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표결에 참가는 했으나 기권했다. 2005년부터는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도 상정됐다. 그런데 2006년엔 돌연 결의안에 찬성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엔 다시 기권으로 돌아섰다. 2006년에 찬성한 것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특수 사정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북한과 대화가 잘되면 뒤로 빼고 잘 안되면 앞으로 나가는 ‘뒤죽박죽 정책’이었다. 이런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완전히 바뀌어 2008년부터 아예 결의안의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진보 소극 - 보수 적극’이라는 구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언론의 시각도 이런 구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쨌든 진보진영이 그간 북한 인권 문제를 애써 외면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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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보진영은 우리 사회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바뀌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탈북자 송환 반대 운동이 그걸 보여준다. 보수 정객들의 항의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배우 차인표가 시위장에 나오고, 안철수가 농성장을 찾아 “탈북자 인권은 체제와 이념을 떠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다. 탈북자 문제가 우리 사회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긴급 과제로 떠올랐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국가보안법, 노동기본권 제한, 양심적 병역거부, 언론자유 등 국내 인권 문제에 쏟아온 열정을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도 같은 무게로 돌려야 한다. 설사 보수진영이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호들갑을 떨면서 대북 공격의 소재로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개의할 필요가 없다. 사실 어느 나라나 인권은 진보진영의 대표 상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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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3000명이나 되는 국내 탈북자들의 존재나 국내외의 탈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여론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인권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인류 보편의 가치임에랴. 남북의 인권에 대해, 아니 세계 어느 곳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로 접근하는 것은 시대정신이자, 보수가 따라 하기 힘든 일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