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현재 명동이나 충무로 일대인 남촌에 거주하였다. 자연스럽게 근대적 개발 역시 그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한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서울의 북촌은 개발에서 소외되었다. 우리가 여전히 북촌에서 한옥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된 이유들 중의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한옥이 남아 있는 이 공간을 전통과의 관계에서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시간의 시험을 뚫고 살아남은 북촌의 한옥들이 품고 있는 것은 순수한 전통이 아니다. 그곳은 이국적 요리들과 낯선 이름의 커피들, 로마네 콩티와 같은 고급 와인을 즐기는 이들로 북적인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통은 어쩌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나 이미지가 아닐까?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