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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아산에서 온 하늘채어린이집 아이들이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으며 인솔 선생님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따라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국가등록유산으로 지된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 바탕에는 70여 명의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아산에서 온 하늘채어린이집 아이들이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으며 인솔 선생님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자 따라서 만세를 외치고 있다. 국가등록유산으로 지된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 바탕에는 70여 명의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말의 뒤꽁무니나 쫓는 처지인지라, 광복절을 맞아 분한 마음으로 문병란의 ‘식민지의 국어 시간’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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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일장기)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더러운 놈)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선생)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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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 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