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들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 여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딴 전지희·이은혜 선수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유도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딴 허미미·김지수 선수는 재일동포 출신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허 선수는 개인전에서 은메달까지 땄다.

귀화란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의 경우 몇가지 경로가 있지만, 대체로 필기·구술시험과 면접심사를 거쳐 국적을 부여한다. 국적법에서 규정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한국인이 되기 위한 자격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귀화시험 합격률은 60~65% 수준이다. 열에 서넛은 떨어진다. 가끔 외국 출신 연예인들이 귀화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토로하는데, 괜한 소리만은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치 및 경제 제도를 잘 알지 못하면 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광복절의 의미를 설명하라거나, 애국가 1절을 불러보라거나, 민주 선거의 4대 원칙이 아닌 것을 고르라는 식의 문제가 단골로 나온다.

광고

지난 3월 독일 정부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문항을 귀화시험에 추가하기로 했다. 독일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가”라고 콕 집어 묻겠다는 것이다. 극우세력의 반유대주의 선동에 대한 대응이다. 독일에선 나치의 만행을 부정하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독일 내무장관은 “과거사 책임은 독일 정체성의 일부이며, 이런 가치를 공유하지 않으면 독일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귀화시험에 합격하면 국적증서를 받는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 기념비 앞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처럼 순국선열의 얼이 깃든 곳에서 수여식이 열린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수여식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의 독립 의지를 새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광고
광고

윤석열 정부가 연이어 ‘한국인의 기본 소양’을 무너뜨리고 있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명기하지 않은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찬성하고, ‘위안부’의 강제성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는 사람을 방송통신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혔다. 급기야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친일파를 두둔하는 뉴라이트 성향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했다. 한국인의 자격을 물을 자격이 있는지 되물어야 할 판이다.

유강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논설위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