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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벨로바는 1916년 7월12일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파블리첸코는 첫 남편의 성이다. 아이를 낳고 곧 이혼했다. 얼마 뒤 역사를 공부하러 우크라이나에서 대학을 다녔고 생활 스포츠로 사격을 했다.

1941년에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소련군에 자원입대했다. 군은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를 간호사로 배치했으나, 본인이 고집하여 최전선에 소총수로 나갔다. 8월, 전투 중 동료가 부상당하자 그의 소총으로 독일군을 쐈다. 백발백중이었다. 파블리첸코는 오데사 전투와 세바스토폴 전투에서 스나이퍼로 활약한다. 1941년과 1942년 두 해 동안 309명의 적군을 사살했다.

1941년에는 군에서 만난 알렉세이 키첸코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직후 키첸코는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서 세상을 떴다. 1942년에는 파블리첸코 본인도 부상을 입는다. 그가 나치의 손에 죽을까 봐 소련군은 그를 최전선에서 뺀다. 파블리첸코는 선전전을 맡는다. 1942년에는 미국을 방문한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엘리너 루스벨트와 친구가 된다(그 남편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던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전쟁 영웅 파블리첸코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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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파블리첸코는 미국 기자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화장을 하고 전투에 나가는가?” “미국 여성은 짧은 치마를 입는다. 당신 치마는 너무 길지 않나?” “군복을 입으니 살이 쪄 보이는데?” ‘죽음의 여인’이라 불리던 그도 성차별을 피해 가지 못했다.

“나는 스물여섯살이고, 파시스트를 309명 죽였다.”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말했다. “기자들이 내게 한 질문은 어리석다. 이런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나는 전선에서 왔고 전쟁터에서 나는 독일 침략자들과 맞서 싸웠다. 이 일이 파우더나 립스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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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뒤 대학에 돌아가 공부를 계속했다. 소련 해군에서 일을 했다. 1974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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