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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7일 오후 한국방송(KBS)을 통해 방송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논란과 관련해 박장범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7일 오후 한국방송(KBS)을 통해 방송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논란과 관련해 박장범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연합뉴스

이희용 | 언론인

 50년 전 미국에서는 전세계 정치사와 언론사에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과 관련해 1974년 7월27일 연방 하원 법사위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개입과 은폐 사실을 시인하고 8월9일 사퇴한 것이다. 닉슨은 재임 중 베트남전 종결, 아폴로 11호 달 착륙, 중국과 외교관계 수립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으나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언론들의 끈질긴 취재로 궁지에 몰려 ‘재임 중 물러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았다.

문제는 도청이 아니라 이를 덮으려는 거짓말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직전까지 갔을 때도 미국 국민은 스캔들 자체보다 거짓말에 더욱 분노했다. 우리나라 헌정사에서는 대통령이 거짓말 때문에 물러나거나 탄핵 위기에 몰린 적은 없다. 거짓말한 사실을 깨끗이 시인하고 사과한 사례도 찾기 힘들다. 양국의 국민성과 정치 풍토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우리나라 언론이 대통령의 거짓말에 ‘너그러운’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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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이 사실과 달라도 그대로 전달하기 바쁘고, 진실을 감춰도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으니 대통령의 거짓말은 횟수가 거듭되고 규모도 커진다. 의혹이 불거지면 확인 노력은 제쳐놓은 채 ‘논란’이란 제목 아래 찬반양론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게 관행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사실을 부인하고, 장모·아내와 관련한 해명 등에서 여러차례 거짓말한 전력이 있다. 취임 후 2년여 동안에도 숱한 거짓말 시비를 낳고 있는데도 언론은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한 대통령실 외압 의혹도, 지난 5월 초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왜 무리하게 진행해 인명사고가 나게 했느냐고 질책성 당부를 했다”고 엉뚱한 답변을 했을 때 다른 기자라도 “조사보고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재차 물었다면 사건 진상에 더 일찍 다가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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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특별대담에 나선 한국방송(KBS) 앵커가 ‘파우치’ 운운하며 “부부 싸움 하셨냐”고 물어보는 대신 “김 여사가 디올백 받은 사실은 언제 알았고, 왜 즉각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면 ‘디올백 스캔들’은 벌써 종식됐을지 모른다. 최근 김진표 전 국회의장 회고록으로 불거진 이태원 참사 관련 대화도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실히 따져 묻고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대통령실의 반응과 해명이 갈수록 달라지는데도 기자들이 이를 앵무새처럼 전달하기만 한다면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답변이 궁색해질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키기 불가능하거나 지킬 생각이 없는데 한 약속은 거짓말과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면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기자 질문에 직접 답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김 여사의 다짐은 풍선처럼 허공을 날고 있다. 상황이 달라져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 경우라도 사정을 충분히 설명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 비용을 496억원이라고 밝혔으나 이미 143억원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고 앞으로 얼마가 더 들지 모른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이렇다 할 사과도 해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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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착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을 인지하면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틀린 말을 해도 언론이 지적하지 않으니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기 일쑤다. 윤 대통령을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든 건 바로 언론이다. 거짓말이 안 좋다는 건 다 알지만 대통령의 거짓말은 더욱 나쁘다. 책임과 권한이 크고 셀 뿐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어떻게 고위공직자나 일선 공무원에게 정직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법률상 거짓말은 사기죄, 위증죄, 허위사실 공표죄 등으로 처벌할 수는 있지만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내란·외환죄 말고는 형사 소추가 금지되므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더욱 절실하다. 지지하는 정파의 유불리를 떠나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언론이 따끔하게 꼬집고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 언론도 거짓말을 자주 하니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대통령의 잘못을 감싸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