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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여성노동조합,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등이 모인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 출범식이 지난 3월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여성노동조합,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등이 모인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 출범식이 지난 3월6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참 난감한 노릇이다. 그 ‘집게손’ 모양 말이다. 살다 보면 그런 손가락 모양을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니 나는 평소에 안경을 살짝 고쳐 쓸 때 반드시 그 ‘집게손’ 표시를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맞은편에 앉은 남성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걸까? 모욕의 상징을 몰래 숨겨두며 혼자 즐기기라도 했을까? 요즘의 논리를 따르자면 “집게손의 의미를 알면서도 사용”했으니 나는 조리돌림을 당해 마땅하다.

이게 무슨 억지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예컨대 전쟁기념관 포토존에 그려진 집게손이 남성혐오라는 주장은 얼마나 우스운가? 해당 그림은 2013년도 작품이었는데도 남성혐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포토존은 속전속결로 철거되었다. 넥슨은 자사 게임 캐릭터가 집게손 모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자 책임을 외주업체에 돌리며 즉각 고개를 숙였다. 당시 외주업체였던 스튜디오 뿌리는 기자회견에서 “사건 이후 모든 캐릭터들이 주먹을 쥐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는데, 이제는 캐릭터의 감정과 성격을 반영할 수 없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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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게손을 물고 늘어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페미니스트 처벌이기 때문이다. 즉, 집게손의 이면에 ‘남혐을 일삼는 여성 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를 찾아내 처단하는 것이 바로 이 집게손 전쟁의 사명이다. 얼마 전 르노코리아의 홍보 영상에 출연한 여성 직원은 집게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신상이 공개되었고 “정당한 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다. 회사에는 해고 요구가 빗발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도덕적으로 동기화된 폭력’의 대표적 사례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동은 도덕적 동기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남혐’을 퍼뜨리는 여성들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며, 따라서 솔선수범해서 그들을 찾아내 처단해야 하고, 이를 통해 무너진 성별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집게손은 이 집단 폭력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핑계가 된다. 실제로 남성혐오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물증은 없지만 어딘가에는 반드시 집게손이 있는 것이다. 집게손이 나타났다! 좌표를 찍어라! 남자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집게손 전쟁에 참전한다. 알다시피 성전에서는 폭력이 정당화되므로, 신상 공개도 살해 협박도 정의로운 싸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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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케이트 만은 만약 여성혐오에 느낌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의로움의 느낌일 것이라고 썼다. 자신이 처벌하는 대상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남성혐오자이므로, 자신이 가담한 행위는 마녀사냥이 아니라 정의 구현이므로. 그래서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의로움에 벅차오르게 된다. 자신의 행위는 정의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논리적 비판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 결국 젠더 평등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적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으로 동기화된 폭력은 전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만의 특수성도 있다. 첫째, 정치인과 기업이 ‘남혐’ 이야기만 나오면 숙의 과정도 없이 납작 엎드린다. 둘째, 지목된 여성들이 실제로 해고 및 징계 등을 통해 처벌받는다. 셋째, ‘페미 사상 검증’ 등과 같은 방식으로 기업이 처벌 대상을 여성 전체로 확장한다. 즉,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행위자들이 오히려 폭력에 동조하고 가담한다는 점, 특히 기업이 하다못해 손익계산도 하지 않고 무작정 굴복한다는 점이 바로 한국적 현상이다. 이런 폭력에 일일이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 과연 사업에 유리할까? 집게손과 매출의 상관관계라도 밝혀졌나?

당신들 표현대로 “고객 갑질”에 영원히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이쯤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의로움의 효능감’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어떨까. ‘가짜 리스크’를 ‘진짜 리스크’로 만드는 것은 기업들 자기 자신이다. 기업 차원에서 이런 반사적인 대응이 반복되니 직원들은 쓸데없는 집게손 걱정이나 해야 한다. 외부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아도 보호받기는커녕 해고될 게 뻔하다는 점도 매번 확인한다. 직원도 고객도 이런 회사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경영 전략도 경영 철학도 없이, 한 줌의 폭력에 굴복하는 기업이라니. 그 집게손보다도 초라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