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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진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진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역사부정죄’란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고의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홀로코스트 부정죄’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2005년부터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졌고,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부정죄가 최초로 입법에 성공해 2021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당시 신설된 법조문 중 일부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하 ‘5·18부정죄’)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악의적이고 패륜적인 허위 표현이 사라져야 한다는 점에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대응하는 정책수단이 ‘형사처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비판이 적지 않았다. 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5·18에 대한 표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② 무죄든 유죄든 간에, 역사부정 표현을 한 자가 ‘순교자’ 행세를 해 사회적 주목도만 높이는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는 점이 반대의 주된 이유였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역사부정죄는 보편적이지 않다. 아시아권에서는 유례가 없고, 비유럽국가에서도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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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의 핵심적 계기는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퍼트려온 지만원을 국회로 불러 열었던 공청회였다. 일베와 같은 극우 커뮤니티를 넘어 헌법기관까지 역사부정 만행에 동참하자, 임계점을 넘었다는 여론이 끓어올랐다. 역사부정죄는 그렇게 대한민국 법률이 되었다. 그리고 2024년 6월 기준 3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이 글의 질문이다. 역사부정죄는 작동하고 있는가? 4·3 등 다른 역사적 사건으로 역사부정죄 입법 발의가 확산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 등을 놓고 이루어진 찬반 논쟁을 넘어, 입법된 법률에 대한 실증적 평가가 필요하다.

역사부정죄의 ‘작동’이란 ① 실제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② 입법 이후 역사부정 표현이 줄어들고 있는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시행 초기이기에 이 글은 전자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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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정죄의 핵심은 처벌이다. 검찰의 기소, 법원의 재판과 판결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필자가 여러 층위로 확인한 범위를 전제로 할 때, 2024년 6월 기준 5·18부정죄로 검찰이 기소한 건은 0건이었다. 기소가 없기에 단 한건의 재판도, 처벌도 없었다.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주광역시는 2021년부터 매년 30여건의 5·18부정표현들에 대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해왔고,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넘어간 사건도 상당하다. 광주지방검찰청이 이 정도의 주목도를 가진 사건을 특별한 생각 없이 쌓아두었다 볼 수는 없다. 즉, 검찰은 수년간 역사부정죄 사건을 꽤 의도적으로 들고만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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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이한 현상의 이유를 추정해보면 이렇다. 하나는 ‘증거’ 문제일 수 있다. 형사법정은 높은 수준의 증거와 입증을 검사에게 요구한다. 법관이 고도의 확신을 갖지 못하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란 원칙에 따라 무죄다. 또한 역사부정죄는 특정인에 대한 허위사실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기존의 명예훼손류 사건과는 입증 범위가 전혀 다르다. 누군가 ‘북한군이 5·18 광주에 있었다’라는 허위사실을 말했다고 치자. 검사로서는 5·18 광주에 북한군이 한명도 없었다는 부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이미 학문적·대중적으로 결론이 난 사실임에도, 형사법정에서 역사부정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수준을 초과하는 증거가 요구된다. 그 수준의 증거가 없다면, 그건 검사의 책임인가 아니면 무리한 제도(정책)의 책임인가?

역사를 법정에 올려 검사와 판사 몇명에게 모든 걸 맡기는 상황이 문제적이란 비판은 대표적인 역사부정죄 반대 논거였다. 기소된 피고인으로서는 증거로 제출된 문서에 지엽적 오류 몇가지만을 물고 늘어지면서 재판을 오히려 허위사실 유포의 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역사부정죄 기소 0건인 현실은, 이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검찰이 역사부정 사건을 들고만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기소할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검찰은 3년6개월 동안 기소뿐만이 아니라 불기소도 안 했다. 특정한 시점에 경찰로부터 송치된 사건 중 일부를 기소한다면,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불기소 결정을 해야 한다. 검찰이 불기소하는 순간, 불기소된 표현은 마치 정당한 표현인 양 왜곡되어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 부당하고 문제적이지만 처벌할 수준까진 아니기에 불기소 결정을 했겠지만, 유죄·무죄-기소·불기소 이분법 속에서 맥락은 담기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검찰의 면죄부’라는 비난이, 다른 편에서는 ‘이것이 진실’이라는 왜곡이 등장할 것이다. 이 딜레마적 상황은 역사왜곡죄 반대의 중요 이유였고, 예견 가능한 상황이었다.

역사부정죄는 작동하는가? 최소한 형사절차 측면에선 작동하지 않는다. 역사부정죄를 확대하려는 논의는 이 상황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이 부작동에 역사부정죄의 여러 문제점이 집약되어 있다.

※본 칼럼은 필자가 2024년 6월28일 제주대학교 4·3융합전공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역사왜곡죄라는 입법적 사건에 대한 범죄사회학적 소고: 5·18 및 4·3 특별법을 중심으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